"5천만의 도의 교과서 됐으면…"|『사미사교서』17권을 국역한 탄허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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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희를 앞둔 대학석 탄허스님 (69·조계종월정사조실)이 한국불교의 숙원이던 승려교육의 기본교재『사미 사교서』17권을 국역, 주역까지 붙여 출간했다. 『결코 몇천명에 불과한 승려들만을 위해 국역작업을 벌인 것은 아닙니다.
5천만 민족의 정신교육과 도의교육교재를 만든다는 뜻에서 이일을 했읍니다.』 탄허스님은 5년 동안 여행 중에도 원전과 원고지를 챙겨 가지고 다닐만큼 거의 매일같이 새벽 2시부터 저녁9시까지 번역원고를 썼다고 했다. 『사미 사교서』 17권의 국역원고 분량은 2백자원고지 10만장이 넘는다.
내년이면 고희신데 그 같은 정력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가족없이 혼자(비구)생활 하는 덕분』이라고 하며 많을 때는 하루에 1백여장을 써냈지만 어려운 귀절에 부닥치면 온종일 그 뜻을 새기느라 10여장밖에 못 쓴때도 있었다고 했다.
『사미 사교서』란 불가교육에서 각각 국민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사미과」 「사교과」의 필수교과서를 말한다.
이번 탄허스님의 국역본은 사미과 3권, 사교과14권. 사미과의 내용은 「계초심학입문」「후발심수행장」「자번문」「삼교평심론」「고정론」(제1권)과 원문잔주까지를 번역 삽입한 「치문」 (제2 제3권)으로 돼 있다.
사구과는 「능엄경」(5권), 「기신논」(3권), 「금강경」(3권),「원각경」(3권)으로돼 있는데 계환·원효·함허스님 등 옛고승들의 주해와 소를 모두 국역해 넣었다.
책 양쪽 머리에 진주산 붉은 비단조각을 붙여 한장 제본을 하고 미색의 한국 최고급지를 사용한『사미사교서』는 5백질 한정판으로 제작비만 5천6백만원. 은행융자와 개인사채 등으로 비용을 충당했다고-.
탄허스님은『불가 삼보의 하나인 법뢰(경전)야말로 모든 도와 부처님의 근원이기 때문에 이번 「사미 사교서」의 국역본은 극진한 신심으로 장엄하게 꾸몄다』고 말했다.
이미 탄허스님에 의해『화엄경』47권 (대학·대학원과정)과 『사집』 4권 (중학교과정)이 국역,출판되고 이번에 『사미사교서』가 출간됨으로써 한국불교의 승려교육 교재는 모두 완전히 국역돼 우리말로 쉽게 읽힐 수 있게 됐다.
탄허스님은 이 같은 불가의 대업을 이룬 감회를 한마디로 『염리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사명의식에서 했다는데 조그마한 긍지를 느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경전을 모시지도 않은 불당을 「법당」이라고 부르며 불당에만 시주를 하는 어리석은 신심이 팽배한 오늘의 불교 현실을 개탄하는 탄허스님은 앞으로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면 유가의『주역』(「신해서」「정주주석」포함)과 『노장서』등도 국역하겠다고 말했다.
1935년 오대산 월정사에 입문, 방한암스님 밑에서 20년 동안 비수도를 닦은 탄허스님은 올해로 승려생활 47년을 맞았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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