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스케일·경쾌한 전개 기대|이문열의 중앙일보 역사 소설 연재에 붙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평범한 독자로서의 나와 작가 이문열과의 만남은 79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사람의 아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때의 느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그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깊이와 넓이에 비해 읽 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인 취향일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65년인가 66년엔 장정본만 5백여권 읽은 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의 독서에 힘입은 바가 많다』고한 그의 「작가 노트」에 기대를 걸면서 다음 작품들을 주시해 봤다.
『사람의 아들』에 이어 그는 불과 반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후 두번째 작품집 『그해 겨울』을 내놓았다. 그 책을 첫머리의 『들소』에서부터 읽지 않고 『맹춘 중하』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우리 글의 문체 중에서도 가장 품격이 높은 것으로 믿어지는 장르인 <수필> (이 장르는 근래 약 10년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완전히 바겐 세일의 상품처럼 전락했지만 여전히 최고의 산문은 그 속에 묻혀 있다)의 격조와 간결성을 빌면서 씌어진 이 단편은 이문열의 작가적 능력과 성격을 짐작케 한다.
이 단편은 우리 옛 글의 운치를 특징 짓는 담백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선생은 경북 청송사람이다.> 이 작품의 『기일봉춘』으로 넘어가서 <그런데 그해 백보 선생이 봄을 보았노라고 공언한 것은 아무래도 좀 일렀던 성싶다>로 시작되는 재치 있고 어이없는 봉춘의 대목도 물론 아름답지만 『기사욕기』의 첫머리는 실로 『사람의 아들』에서의 부담스러움을 만회하게 해준 대목이었다. <백보 선생은 지금 물 속에 잠긴 자기의 발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지난 학급 야유회때 봐두었던 금호강 상류의 한적한 곳이다.
푸른 정맥이 비치는 선생의 희고 얇은 발은 그날 따라 육신의 일부라기보다는 무슨 낯선 물건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그 이물스러움은 파랗게 민 젊은 이승의 머리를 대할 때 젖게 되는 어떤 애련함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몇년만 인가.
딱딱한 구두와 화학 섬유에 짜여 아스팔트 위의 지정된 코스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던 이발이 늦어 돌아온 밤의 희뿌연 형광등 아래 소독된 수돗물 속에서가 아니라 쨍쨍한 햇볕 아래서 자연 그대로의 흐름 속에 잠긴 것을 보는 것은.> 이문열이 쓴 가장 훌륭한 모든 작품들 속에는 항상 떠도는 「푸른 정맥이 비치는」발과 「고향의 산하」가 커다란 축을 이루고 있다. 그의 「작가 노트」, 「나의 문학 수업」을 읽은 후에 생각해 보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그는 어느 점도 고향이라는 지극히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추상적인 공간을 찾아서 떠돌아다닌 도정을 소설의 여러 가지 형식 속에 담아본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단편『그해 겨울』을 전체적인 도입부로 하고 같은 작품집 속의『사라진 것들을 위하여』를 그의 제3의 작품집『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 포함시킨다면 그는 이제 무너져 가고 있는 어느 문화의 마지막 공간을 우리 둘의 심리 원형 속에 깊숙이 찍어놓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소설, 특히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를 읽어보면 대개는 퇴색한 기억 속에서 잃어 버렸던 우리 둘 모두의 갖가지 인류학적 체험의 내용들을 시시콜콜이 수집 분류한 것도 감동의 일부를 이루지만 그 같은 소재를 그의 말대로 <장려한 낙일> 속에 조명하는 문체 자체가 또한, 이제는 사라져 가는 우리 옛 글의 가장 아름다운 격을 되살리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주제와 문체가 다같이 <낙일> 어 지닌 아름다움 특유의 낭만성을 띠고 있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필경 소설가 특유의 장인 기능에 의하여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새 하곡』을 통해 작품을 조직하는데 있어서 노련한 능력을 보여준 이 작가는 보다 거창한 규모의 건축을 성공시켜 줄 것으로 믿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새 역사소설은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다.
특히 그의 새로운 시도로 보여지는 『그 찬란한 여명』은 그가 아직까지 채 보여주지 못한 그의 작가적 재능과 그 특유의 문체가 더욱 연마되어 세련된 조화를 이루리라는 점에서 이제까지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한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김화영 <고대 교수·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