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2)|<제74화>한미 외교 요람기(8)-한약욱|카이로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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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카이로 선언은 처음으로「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한국을 독립시킨다고 약속했다.
그러나「적당한 시기」라는 표현에 대해 이승만 박사이하 재미 한국인들은 착잡한 반응이었다. 이 박사는 이 말이 곧「루스벨트」대통령의 식민지 국가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루스벨트」대통령의 인식이란 한마디로 한국과 같은 신생 독립국가에 있어서는 적당한 기간의 신탁통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실제 필리핀을 예로 들어 독립의 준비기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꿰뚫어 본 이 박사는 국무성에 이 말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힐 것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이 박사는 미 의회의 중견 정치인들에게도「in due course」가 감추고 있는 독소적 내용을 지적하는 편지공세를 폈다.
45년1월쯤 이 박사는 나에게 핫스프링즈(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열린 태평양 관계연구소 (Instiute of Pacific Relations)의 일본문제에 관한 비공개 세미나에 참석하고 오라고 일렀다.
이 연구소는 오늘날 브루킹즈 연구소와 맞먹을 정도로 미국무성에 영향력이 있는 연구단체였다.
이 박사는 내게『직접 참석은 안될 테니까 중국대표를 만나 중경의 임시정부를 승인해야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하라』고 말했다. 나는 거기서 후일 주한대사를 역임한「샤오·울·린」과 호적 주미 중국대사를 만나 최초로 남을 설득하는 공적 임무를 수행했다.
그해 2월4일「루스벨트」·「처칠」·「스탈린」은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다. 회의결과 발표된 코뮈니케는 한국문제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게 이박사의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해5월 이 박사에게 얄타회담에서 장차 한국을 소련지배하에 두도록 하는 비밀협정이 있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요지는「한국을 태평양전쟁 후까지 소련세력 하에 두되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영 양국은 한국독립에 대하여 아무공약도 않는다고 선언했다는 것.
국무성과의 피나는 싸움이 시작됐다. 당시 이박사가「루스벨트 대통령과 국무성에 보낸 항의편지 요지는 다음과 같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의 한국 임시정부에 대한 태도가 미지근했는데 지금은 적극적이다. 미국정부만 동조하면 중국은 즉각 승인조치를 하겠다고 하니 미국은 방해하지 말고 중국정부의 입장에 동조해주기 바란다.
나의 걱정은 소련이 한반도에 침입해서 공산정권을 수립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조선 해방위원회가 조직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소련은 폴란드에서도 그랬다시피 이를 거점으로 한국에 침공해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는 길은 당장 미국이 임시정부를 승인하는 것뿐이다.』
이 같은 이박사의 편지에 국무성은 그때까지 한번도 회답을 주지 않았다. 해방 후 훗날 나는 그때의 국무성 문서철을 찾아 본적이 있었다. 이박사의 편지가 모두 보관돼 있었는데 거기에는『내용이 너무 논쟁거리라 회답 안 보냄. G·M』이라는 부전지가 붙어 있었다.
G·M이란 그 문서취급자의 이니셜인데 바로「조지·매퀸」이 장본인이었다. 「매퀀」은 한국에서 일한 미국선교사의 아들로 평양에서 출생했다. 그가 청소년 시절 간직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국무성에 근무하는 동안 재미 한국 지도자들을 좋지 않게 생각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얄타회담이 끝난 얼마후인 4월2일「루스벨트」대통령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5월8일 독일이 마침내 패망했다.
이 박사는 5월15일 샌프란시스코의 유엔 창립 준비총회에 참석할 무렵「트루먼」대통령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는 내용은「루스벨트」대통령에게 보낸 것과 비슷했으나『임시정부 대표를 준비총회에 업저버로라도 꼭 참가시켜 달라』는 것이 새로운 것이었다.
며칠 후「트루먼」대통령은「록하트」국무장관 서리 명의로「한국대표부」의장(Chairman of Korean Commission)이 박사 앞으로 회답을 보내왔다.
『얄타회담에서 비밀협정은 없었다. 한국 독립에 대해서는 카이로 선언에서 밝힌 대로다.
한국의 독립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엔 준비총회의 참가자격은 없다. 참가하는 다른 망명정부는 각기 자국영토 안에서 권한을 행사했던 정부다. 한국의 임시정부는 법적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직접통치한 경험도 없다.』 <계속> 【한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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