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 일인 취급받은 한국인>
이승만 박사는 비록 「F·루스벨트」대통령이나 국무성으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임시정부의 승인을 성취하지는 못 했으나 그를 돕는 훌륭한 미국인 친구를 많이 갖고 있었다.
워싱턴의 변호사 「존·W·스테거」씨, 「허스트」계의 통신사 INS(후에 UP와 합병해 UPI가 됨)의 「제럼·윌리엄즈」 기자, 미 상원 전담목사 「브라운·해리스」 박사, 미 국방성 OSS의 책임자 「프레스턴·굿펠로」 대령과 「헐버트」 박사, 「스코필드」박사 등이 그들이다.
이 박사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의 기간동안 두 가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는 미국 내 한국인의 신분 문제. 이 박사는 평소 한국인이 미국정부에 의해 일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무척 원통하게 생각했다. 특히 태평양전쟁후 미국민은 일본인을 적성국민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한국인이 덤으로 얹혀 당한 고초는 치욕적인 것이었다.
이 박사는 「비들」 법무장관을 찾아가 열변을 토했다. 우리를 코리언으로 대접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박사의 이 같은 항의는 이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법무성은 한국인이 소지하고 있는 일본 여권을 거둬 가고 대신 미 법무성 발행의 신분증을 주었다. 이후 한국인은 「우호적 외국인」(friendly alien)취급을 받고 카메라의 소지도 허용되었다.
또 하나의 성과는 미 육군전략처(OSS)와 접촉해 재미한국인 1백 명을 선발, 미군특수부대원으로 훈련시킨 다음 일본의 후방에 투입하도록 추진한 것이다.
일본의 패전이 앞당겨 옴에 따라 한국인 커맨도가 실전에 가담할 기회는 놓쳤지만 대전이 끝난 뒤 일본점령 시기에 극동에 배치되어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한 바 있다.
이 때 OSS요원 중에는 얼마 전에 작고한 장기영(전 체신부장관)·이순용·김길전씨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 박사는 이즈음 임시정부의 구미위원부를 확대 개편해 각 분과위원회를 두고 많은 유학생을 포섭했는데 나는 정치·정보위원회에 속해 있었다.
나를 포함한 유학생들은 임시정부의 승인을 위한 이박사의 노력에 수족처럼 움직였다.
42년 말부터 이 박사는 미국의 주요도시에서 갖가지 명목으로 디너파티를 열어 미국인을 상대로 설득 캠페인을 벌였다.
나는 그 때마다 파티의 테이블 하나를 샀다. 파티 자금은 한국인이 십시일반으로 사서 충당했다.
뉴욕의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에서 열린 파티에는 「맥아더」 장군의 보좌역이었던 필리핀의 「로물로」 대령(후일 필리핀외상이 됨)이 참석해 이 박사의 연설에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이 박사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에서 가진 파티에는 「아인슈타인」박사도 참석했었다. 「로물로」는 훗날 이 박사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나는 당시 학생신분으로는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미국이 중경으로 쫓겨간 장개석 정부를 통해 수집해 온 일본에 관한 정보를 분류하고 중요한 것은 번역해 국회도서관에 비치하는 일이었다. 시간당 2달러50센트를 받았는데 집사람이 도와주어 수입이 좋았다.
이 때 내가 받은 인상은 미국이 장개석 정부를 끔찍이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미 정부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나치게 영국과의 연대감을 존중한 나머지 극동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불만이 대두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임시정부를 승인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박사는 누차 임시정부도 랜드리스제도(미국과 함께 싸우는 나라에 대해 무기와 자금을 대주는 제도)의 혜택을 받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국무성의 반응은 냉담했다.
국무성은 그 때마다 『한국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임시정부를 어떻게 보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며 『우리가 임시정부를 승인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지도자를 내세우는 격』이라고 답변했다.
우리 부부와 이 박사 부부는 자주 포토맥강에서 낚시를 했다. 이 박사는 고깃배를 저으면서도 불현듯 『우리는 독립이 된다』고 독백하는 등 43년부터는 독립을 거의 신앙처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43년11월 카이로회담이 개최됐다. 「루스벨트」 「처칠」 장개석이 회동한 이 모임을 이 박사는 미·영이 중국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회담 결과 이른바 카이로 선언이 발표됐다. 3국이 우리의 독립을 최초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쾌재를 불렀지만 선언문을 자세히 읽은 이 박사는 또 하나의 걱정에 싸였다. <계속>계속>전쟁중>
(3142)제74화 한미외교 요람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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