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계수」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작가 「앨릭스·헤일리」의 소설 『뿌리』 가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새롭다. 그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의 경지를 넘어 인간의 근원적인 향수를 일깨웠던 점에서 그처럼 많은 사람의 감동을 자아냈을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2세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일깨워 주는 교육이 실시될 것이라고 한다.
내년부터 개편되는 저학년 교과서에 수록될「가계수」(family tree)가 곧 그것이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생각되는「족보」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가족으로서의 유대를 가르쳐 주는 과점으로선 적절함직하다.
어린이들은 가까운 선조의 이름·생년월일·결혼년도·사망년월일·주거·직업 등 생활사의 내용을 우선 조사하고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종래 망각되었던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족의식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같은 교육이 당장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는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같은 내용의 교육이 한국인의 전통적 사회관행과 가족제도 등에 상당히 접근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광복이후 35년 동안 우리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족제도면에서는 대가족이 핵 가족화하는 길을 치닫고 있었으며 그로 인한 가족의 원자화와 가정의 해체라는 병적 징후에 차차 고통을 겪고있다.
국민학교교과서에서조차 조부모의 등장은 낯선 것이 되고 가족이라면 아버지·어머니와「나」와 동생에 그치는 것이 상식이 된 것이다. 이런 가족구성에선 종적으로 부모가 있고, 횡적으로 형제가 있지만 그 밖의 가족련학는 찾을 길이 없다.
이럴 때 「나」는 너무나 간단한 가족의「단순관계」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사회구조에 비해 너무나 동떨어져 적응하기 어렵다. 핵가족하의 어린이들이, 특히「둘만 낳기」시대의 어린이들이 사회성이 약하고 이기적이며 성격적인 결함을 갖기 쉽다는 학자들의 보고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나」의 뿌리가 부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가 있음으로써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달긴」의 확장을 배우는 계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부모를 알면 그에 따라서 종적으로 증조부모도, 고조부모도 있음을 깨달을 것이고 횡적으로 사촌도, 육촌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가족련계를 가르쳐왔던 것이 과거 우리 민족의 자녀교육 부류이었고 그 수단이 되었던 것이「족보」였다.
그러니까 「족보」는 한 족속의 계통이나 혈통을 기록한 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한 씨족·가문의 끈질긴 생명연쇄의 증언이 있으며, 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가고자 한 선조들의 애절한 사랑과 정열이 숨쉬고 있다.
「헤일리」도 그의 소설 『뿌리』를 통해 핵가족·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 미국사회에서 인간이 「자기」의 「뿌리」를 찾는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본래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한국인의 족보는 서구처럼 귀족에 국한하지 않고 거의 모든 가문이 이룰 갖추고있을 뿐아니라 파와 분파가 복잡하면서도 비교적 상세히 망라되고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 족보는 정치사·사회구조·생활사·가족제도 등의 연구에 기초적 자료도 된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족보교육의 교과편성은 일차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주의해야할 측면도 간과될 수 없다.
하나는 족보가 씨족·가문의 현달과 영회를 경쟁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 훌륭한 선조를 자랑하겠다는 뜻은 가상하나 케케묵은 과거의 현달을 들고 나와 오늘의 자신을 과시하는 시대착오적 사고는 피해야겠다.
뿐더러 족보의 역사성·기록성을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되겠다. 기록은정화한 것에 뜻이 있으며 생명력도 있음을 잊어선 안되겠다.
때문에 국민학교 교과에 족보교육을 포함하게 됨에 있어서도 그 같은 진실에 대한 사랑과 선조에 대한 순수한 존경의 뜻이 살 수 있도록 교육당국자들의 배려가 있기를 기대하는 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