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우느라 쉴 틈 없었던 모정…강재훈 사진전 '꼬부랑 사모곡'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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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동요 ‘꼬부랑 할머니’의 한 대목이다. 곡은 흥겹지만 가사를 곱씹어 보면 결코 가벼운 동요로 넘어가지 않는다. ‘꼬부랑 고갯길’은 험난한 인생길이다. ‘꼬부랑 꼬부랑 넘어간다’는 대목에서는 등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굽이굽이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가 강재훈의 ‘꼬부랑 할머니’를 보면 더욱 처연하고 숙연해진다. 그래서 그는 이런 꼬부랑 할머니의 굽은 등허리를 ‘세월봉(歲月峯)’이라 불렀다.

분교나 농촌 풍경, 또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을 꾸준히 담아왔던 사진가 강재훈이 이번엔 농촌 할머니들을 찍은 ‘꼬부랑 사모곡’ 사진전을 연다. 이번 사진전은 농촌 어디서나 쉬이 만날 수 있지만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이기도 한 어머니들에 대한 사모곡이다. 이 사진들을 본 고은 시인은 “처절하다! 가혹하다. 한국 여성의 오랜 풍상이 묻어나는 처연한 사진작업이다”고 표현했다.

사진가 강재훈은 ‘분교/들꽃 피는 학교’(1998), ‘산골분교 운동회’(2006), ‘부모은중(父母恩重)’(2010) 등을 발표하며 고향의 정감 어린 풍경을 오랜 기간 담아왔다. 또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럽고 정겨운 사진으로 대상과 공감하는 작업 방식을 이어왔다.

일간지의 사진기자이기도 한 그는 전국을 다니는 동안 사방에서 ‘꼬부랑’ 사연들을 만났다. 그는 꼬부랑 할머니들을 두고 “산과 들, 바다 어디를 가더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며 “논밭일 바닷일에 평생을 바친 우리 어머니들의 굽은 허리에서 자식들 치다꺼리로 쉴 틈이 없었던 모정을 살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강재훈 사진전 ‘꼬부랑 사모곡(寫母曲)’. 9월 2일부터 14일까지. 통의동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 02-720-2010.

한영혜 기자 sa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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