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3)|제73화 증권시장(71)|불운의 연속|윤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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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명증권이 문을 닫은 후 나는 매일같이 원용덕씨와 만나 소일했다.
때로는 증권 얘기로, 때로는 학창시대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원 장군이 내자 조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상하다 싶어 물어본즉 얼마간의 사업 자금을 줄 터이니 좋은 사업을 해보도록 하라는 언질을 고위층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서둘러 사무실을 마련해 보라고 했다.
나는 홍병준씨 (전 통일증권 사장)를 통해 충무로 2가에 사무실을 얻고 집기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원 장군이 입원을 해버렸다. 뇌출혈이었다.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고위층으로부터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며칠전 집까지 타버려 양복 한벌도 없는 처지라 원 장군은 부랴부랴 양복까지 다시 마추었다.
그러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아 2∼3일 후인가 결국 원용덕 장군은 부귀의 객이 됐다. 25년간이란 오랜 속세의 인연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60세였다. 참으로 큰 슬픔이었다.
그와 함께 재기해 보려던 꿈도 좌절됐다.
나는 민간 투자 개발 공사를 만들고 이를 근간으로 산업 자금을 조성하여 중소기업을 육성해보려 했다.
원 장군은 민간 자금의 동원으로 퇴역한 장군과 고급 장교들을 위한 연금 은행 같은 것을 만들려 했던 것이나 그의 돌연한 죽음은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고 말았다.
원 장군의 죽음으로 그가 받기로 한 자금은 천도교 최덕신 교령에게 주어져 수운 회관을 짓는데 쓰여졌다고 들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름시름 앓던 나의 아내가 입원 진단 결과 뇌염이라는 판정이 났다.
3개월간의 시한부 인생이었다. 열심히 간호했으나 허사였다. 아내의 죽음은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시련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허탈감에 빠졌다. 하루는 신진자동차(주)의 수석부사장 이민우씨를 만났다.
62년 3월초 식산 은행 청산 위원회로부터 국산 자동차 주식 51%를 매입한 뒤 국산 자동차 전무로 있던 이씨의 권에 의해 전방 회장 김용주씨가 갖고 있던 나머지 주식 49%도 사들였다.
사장은 전 대한해연공사 사장 이모씨였다.
부평에 공장이 있던 국산 자동차 (주)는 일제시대에 각종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국내와 만주 방면까지 공급한 회사다
증시에 상장시킬 목적으로 산업은행으로부터 사들였던 것이다.
나는 경영에는 거의 관여 안 했는데 이사장과 이 전무와의 사이에 의견 대립이 심하고 적자가 누적되자 이 전무는 신진자동차 부사장으로 옮겨갔다.
이씨가 초대한 장소로 가니 김창원 신진자동차 사장과 일본 도요따 자동차 판매 부장이 앉아 있었다.
용건인 즉 국산 자동차 (주)가 일본 도요따와 맺고 있는 기술 제휴 계약을 신진자동차로 바꿀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측 파트너를 바꾸자는 얘기였다. 그렇게 하겠다고 간단히 승낙했다.
자동차 공업이 앞으로 한국의 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사업임을 강조하며 김창원씨는 고마워했다.
새나라 자동차를 인수하고 도요따 자동차와 제휴한 신진자동차는 60년대 말 신진자동차 판매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등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5백원짜리 신진주는 3백원에서 4백원 선을 오르내렸다. 이민우 부사장은 주식 대부분이 담보로 산은에 들어가 있다고 했다.
나는 약 40억원짜리 부동산을 제공할 터이니 산은에 담보로 넣고 주식을 빼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하니 이씨는 김창원 사장과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중역회의 결과를 듣고 부동산을 보냈으나 신진자동차 실무진에서는 적합치 않다고 시간을 끌었고 그사이 이민우씨는 한국 기계 사장으로 전임됐다.
이씨의 후임인 마 부사장 (산은 출신)은 신진자동차 대신 신진자동차판매 (주) 문제를 들고 나왔다.
신진자판은 당시 수권자본금 15억원에 불입자본금 12억5천만원으로 주당 시세는 2백20원정도로 기억된다.
재산 상태가 약 9억원은 되는 것으로 김남욱 총무부장은 설명했다.
2백만주를 2백20원에 사기로 했다. 김창원씨와 김제원씨를 대신해서 마씨가 계약서에 날인했다.
당시 마씨는 신진자동차부사장·신진자판 (주) 감사·신진알루미늄 (현 효성 알루미늄의 전신)의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한국 기계 사장으로 간 이민우씨는 잘 조사해서 인수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마 부사장과 김 부장의 설명만 믿고 계약을 체결한 뒤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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