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에 내우겹친 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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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란의 온건파지도자 「바니-사드르」대통령과 회교강경파의 「라자이」수상간의 투쟁이 또다시 표면화되어 혼란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란정국이 혼란에 빠지게된 직접적인 원인은 7일「라자이」계의 이란회교재판소가 「바니-사드르」대통령계열인「회교혁명지를 비릇, 6개 국내신문에 정간명령을 내린데서 비릇됐다.「바니-사드르」대통령과 「라자이」수상의 충돌은 이란회교혁명정부가 출범한 9개월 전부터 시작돼 왔다. 내각이 대통령직속기관이긴하지만 지난 9개월간 「바니-사드르」대통령은 내각에 대해 실질적인 권한행사는 못해왔다.
각료들은 회교도세력의 지배를 받는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라자이」는 공석중인 외상자리를 의회의 인준을 얻어 겸임해 왔다. 게다가「바니-사드르」와 같은 견해를 가진 노련한 이란 중앙은행총재인 「알리·노바리」를 자파사람으로 바꾸겠다고 고집하는가 하면 회교혁명 검찰부의 이름으로「바니-사드르」의 보좌관까지 부패·기밀절취등의 협의로 체포하는 등 대통령의 주변인물들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신문 정간명령이 내리자 「바니-사드르」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음모라고 비난하면서 어떠한「압제와 전제」에도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튿날인 8일에는 테헤란시내 중심가에서 「바니-사드르」대통령지지자들과 강경파 회교도사이에 폭력충돌이 벌어졌고 회교혁명지는 정간명령에 불복, 이날 4페이지 짜리 축소판 신문을 발행, 테헤란거리에 뿌렸다.
이란의 강온파간 권력투쟁은 79년1월「팔레비」정권이 무너지고 회교혁명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시작된 뿌리깊은 것이다.
79년11월4일부터 시작된 미국인인질사건을 놓고 양파는 사사건건 대립했었고 인질사건해결이 그토록 늦어진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9월 이라크의 침공을 받았을 때도 전쟁수행문제를 놓고 양파는 극한대립을 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란의 실질적인 최고지도자「호메이니」옹의 교묘한 조정으로 정국의 파탄만은 피하면서 위기를 넘겨왔다.
지도자의 위치에서 최종적인 「판결」을 내려왔던「호메이니」옹은 회교혁명세력을 두둔하는 입장이면서도 정치·경제적인 위기에 몰릴때면 「바니-사드르」 대통령을 편들어 왔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처음 시작됐을 때 「호메이니」 가 「바니-사드르」를 감쌌던 것은 그 좋은 예다. 「호메이니」옹은 우선 「바니-사드르」대통령이 회교혁명재판소의 정간명령을 비난하고 이에 반대하자 테헤란 방송연설을 통해 『이란회교당국에 대항하고 도발적인 연설을 행하는 정치인들은 모두 체포, 권좌에서 축출해 낼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자제를 시키려 하고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제도 국민대다수의 양해없이는 힘든 일이다. 한때 「호메이니」에 열광하던 이란국민들이 최근 보이고 있는 행동은 그 자제의 한계를 드러낸 것 같다.
회교혁명재판소의 명령에 온건파세력이 불복, 비록 페이지수를 줄였지만「회교혁명」지를 발행한 것은「호메이니」옹의 명령과 지시에도 불복할 가능성이 있음을 예고해 준다.
마지막으로「바니-사드르」대통령지지자들이 「호메이니」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뛰쳐나와 폭력충돌을 벌이고 있는 것도「호메이니」옹의 권위가 점점 퇴색해가고 있으며 회교의 정통교리만 고수하는 강경파의 정책에 이란국민들의 지지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라자이」수상이「바니-사드르」대통령의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 국민투표에 붙여 판가름 받자고 제의한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다.
결국 회교강경파측은 「바니-사드르」에 대한 공격을 권력의 힘을 빌어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라자이」수상이 자파가 지배하는 의회를 통해 「바니-사드르」대통령을 탄핵 할 수는 있다. 그럴경우「호메이니」옹의 태도는 이란의 앞날을 좌우하는 열쇠노릇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양파간에서 조정해 왔던 것처럼「바니-사드르」를 두둔하리라는 예상이다.
「팔레비」국왕을 쫓아낼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던 바자르의 상인들이 「호메이니」옹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호메이니」자신 종교지도자이긴 하지만 정치·경제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실업자와 악화된 경제사정은 종교인들이 정치에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국민들의 불만을「호메이니」로서도 외면할 수 없게되었다.
국내지도자들이 이처럼 권력투쟁을 벌이고있는 가운데 전쟁까지 치르고있는 이란국민들의 고달픔은 이란·이라크가 지난9개월 전쟁동안 8백억달러의 재산피해를 봤고 5만의 희생자와 15만명의 부상이라는 숫자만 가지고도 설명할 수 있다.
이같이 지겨운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이라크원자력발전소 폭격도 이란·이라크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후세인」이라크대통령은 우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세계여론을 등에 업고 그 반사이익으로 국내정권안정을 꾀하고 대이란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못 거두더라도 국내여론을 완화시길 정치적 계산을 할 것이다.
이란전을 수행하면서 반대파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왔던 「후세인」대통령이 이번 기회를 이용, 국민의 불만을 이스라엘쪽으로 돌리는 것 등이 그러한 방법이다. 그럴 경우 이란국민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페르시아저의 지도권을 장악하려는 「후세인」이라크대통령은 승산없는 이스라엘과의 전쟁보다는 혼란에 빠진 이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후세인」 대통령의 이러한 야망을 다스리기 위해선 이란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내 정국을 안정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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