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아하, 아메리카] 백인 동네에 흑인 이사 못 오게 … 미국 '교묘한 차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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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시 경찰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마이클 브라운 사망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명령하고 있다. 퍼거슨은 흑인 주민이 70%에 육박하나 권력기관은 백인이 차지해 갈등이 높다. [퍼거슨 AP=뉴시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흑인 폭동이 백인과 흑인의 주거지가 나눠진 ‘거주 분리 (Residential Segregation)’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은 흑인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겉으로는 인종 차별이 훨씬 준 것처럼 보이나 인종 간, 빈부 간 섞여 살지 않는 거주 분리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부자 동네엔 부자 백인만이, 빈민 지역엔 가난한 유색인종만이 사는 게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퍼거슨 폭동 이후 거주 분리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특히 백인 도시에 흑인이 늘어나면 백인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번에 폭동이 난 퍼거슨시가 그랬다. 1980년대만해도 백인이 다수였던 이 곳은 갈수록 흑인이 늘었다. 흑인 진입을 막으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백인들이 대거 변두리로 옮겨갔다. 결국 80년 85% 대 14%였던 백인·흑인 비율이 2010년에 29% 대 69%로 역전됐다. 이런 와중에도 백인들은 권력을 놓지 않았다. 시장·경찰서장은 물론 시의원 6명 중 5명이 백인이었다. 전체 53명인 시 경찰관 중 흑인은 단 3명이었다. 흑인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주 분리 현상은 흑인 등 유색인종들이 함께 모여 살기를 원했기 때문인 측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발적 거주 분리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교묘한 수법으로 유색인종들을 이웃으로 삼지 않으려는 백인들의 행태는 큰 사회문제다. 한때 미국에선 공공연한 거주 분리가 성행했고 이를 위한 제도도 시행됐다. ‘조건부 계약(restrictive covenants)’이 대표적이다. 특정지역에서 주택 매입자나 임대자를 백인으로 제한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조건부 계약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지며 교묘한 방식이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중개업자나 집주인의 조작(steering)이다. 흑인들이 집을 찾으면 중개업자들이 흑인 거주지역 집들만 보여주는 식이다. 백인 주택에 대해선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값을 터무니 없이 높게 불러 흑인 동네로 유도한다. 또 백인 손님들에겐 “이 동네는 흑인 거주지라 치안이 불안하다”고 귀띔한다. 이럴 경우 자연스레 백인 지역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런 조작이 인종 분리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불평이 커지며 부동산 알선 과정에서 인종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됐다. 어느 지역에 흑인이 많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처벌 대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거주 분리 시도가 사라지진 않았다. 이번엔 토지 이용 규정을 교묘하게 악용한 수법들이 등장한다. 지방자치가 철저한 미국에서는 각 동네 별로 토지이용 규정을 결정할 수 있게 돼 있다. 대표적인 게 ‘최소 대지 제한 규정 (large lot requirement)’이다. 쾌적한 환경 유지를 명분으로 신규 주택 건축 시 적어도 얼마 크기 이상의 땅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 놨다. 이 최소 면적을 크게 잡으면 사실상 싼 집은 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 때문에 빈민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대표적인 곳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지역이다.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위치한 애셔튼의 경우 집을 지을 수 있는 최소면적이 1에이커(4100여㎡)로 돼 있다.

 거주 분리의 최대 문제점은 빈곤의 악순환을 부른다는 점이다. 미국의 공립 초중고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운영되는 게 일반적이다. 부자 동네일 수록 집값이 비싸 자연히 부동산세 수입도 많아진다. 이처럼 풍족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일 수록 명문이 된다. 시설은 물론, 많은 월급을 주고 유능한 교사들을 스카우트한다.

 반면 빈민들이 몰린 지역의 공립학교들은 시설이나 교사의 질 면에서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학교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좋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소수인종과 빈민 지역에서는 범죄도 잦다. 거주 분리의 부작용이 커지면서 흑인들의 범죄율도 높아졌다. 이 때문에 1960년대 인구 10만명당 1313명이던 흑인 수감자 숫자는 2010년 4347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퍼거슨 폭동 이후 거주 분리의 해악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이를 조장하는 최소 대지 제한 규정 등에 대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 자율성을 존중하는 미국 전통 때문에 쉽게 해결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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