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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세월호가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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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단원고 유가족의 주장대로 조사위에 수사·기소권만 주면 제2의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난 주말 만난 선장 출신의 선주들은 “정치적으로 변질돼 세월호가 산으로 가고 있다”며 혀를 찼다.

 -루머부터 확인해 달라. 세월호가 정말 국정원 소유일까.

 “우리 회사의 배도 보안검사를 받는다. 테러 대비와 전시 동원을 위한 당연한 조치다. 1950년 흥남철수 때 피란민 1만4000명을 구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기억하는가. 군함이 아니라 세월호와 똑같은 7000t급 민간 상선이었다.”

 -일부 유가족은 ‘크레인이 잡아주었으면 배가 안 뒤집혔다’고 하는데.

 “그런 능력의 골리앗 크레인 바지선이 국내엔 없다. 설사 있어도 앵커 내리고 자리 고정에 반나절은 걸리는데, 불가능한 상상이다. 누군가 괴담으로 희망고문하는 느낌이다.”

 -희생자들의 손가락 골절 소문도 떠돌았다.

 “여객선은 통로가 다 연결돼 에어포켓 형성이 어렵다. 합판으로 된 객실 천장엔 조명·공조기·전기 배선용 공간으로 물이 샌다. 희생자 대부분이 침몰 직후 익사나 저체온증으로 숨졌다고 봐야 한다.”

 -근본적인 예방책은 무엇인가.

 “인천항에 가 보면 안다. 중국 웨이하이(威海)까지 341㎞인데 이코노미가 11만원 받는다. 인천~제주는 430㎞이지만 수학여행 때 6만500원을 낸다. 인천~웨이하이 항로는 국제해사기구(IMO) 기준에 따라 60여 개 국제협약을 지켜야 한다. 적재량·평형수 등 감항성이 의심되면 입항이 금지된다. 반면 연안 선박은 ‘물가’와 ‘섬 주민 편의’로 인해 안전기준이 헐겁다. 연안 선박에도 IMO기준을 적용하는 게 비극 예방의 지름길이다. 결국 돈이다. 값비싼 요금을 어떻게 보조할지 고민해야 한다.”

 -IMO의 감항성 기준이 무엇인가.

 “태평양 횡단 시 2~3주간 보통 집채만 한 파도를 2~3번 맞고도 충분히 견디는 수준이다. 선장·선원은 자기 생명이 걸린 만큼 복원력·고박 등 안전에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참고로 일반상식과 달리 뱃멀미가 심한 배가 안전하다. 그만큼 롤링(좌우 흔들림)·피칭(앞뒤 흔들림)에 복원력이 좋다는 뜻이다.”

 -이준석 선장은 법정에서 ‘승객 구조는 해경 책임’이라 발뺌한다.

 “말이 안 된다. 육군은 대위가 캡틴이지만 바다에선 모든 선장·함장이 캡틴이다. 그 배를 가장 잘 알고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영국 여왕·미 대통령도 배에 오르면 캡틴 지시에 따라야 한다. 뱃사람들끼리 ‘이번에 침몰 소용돌이를 피해 200m 거리를 두고 탈출 교신을 한 둘라에이스호의 선장이 진짜 전문가’라 한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나.

 “사고 원인이 대부분 밝혀졌다. 청해진해운은 과적·평형수 부족 등 상사과실에 따라 보험금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희생자 수색은 끝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1000억원 이상 투입해 세월호를 인양해도 국민안전교육 외에는 헐값의 고철로 해체할 수밖에 없다.”

 -침몰선박은 어떤 경우 인양하나.

 “항구에 가깝거나 항로에 지장을 주는 경우, 또 해양 오염이 우려되면 반드시 끌어올린다. 요즘은 거꾸로 물고기 보금자리를 위해 폐선을 일부러 가라앉히는 경우도 흔하다.”

 -세월호도 맹골수도의 장애물 아닌가.

 “세월호 윗부분과 수면의 깊이가 22~23m다. 세계에서 제일 깊은 드래프트(배 바닥에서 수면까지 길이)가 30만t 초대형 유조선의 만재 시 23m다. 그래도 걱정되면 세월호 윗부분을 2~3m 잘라내면 된다. 기름도 따로 뽑아낼 수 있다. 결국 인양은 유가족들이 결정할 문제다. 인양비용을 피해자 보상·안전교육·배삯 보조금으로 돌리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외국 사례는 어떤가.

 “우리의 시신 중시 뿌리는 깊다. 반면 미 해군은 수장(水葬)이 원칙이다. 영국 또한 ‘일부러 내는 사고는 없다’는 게 전통이다. 문제점 개선과 훈련 위주다. 엄벌에 치우치면 좋은 선원들이 떠나버려 사고가 반복된다는 영국식 지혜도 눈여겨봤으면 한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