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8) - 제73화 증권시장(5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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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증주」매수>
필자가 대증주의 매수작전을 벌인 것은 이석운 씨의 재력이 10억원 이상은 충분히 되며 3억∼5억 원까지의 자금동원은 쉬울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증주의 시세는 40전선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주식의 분포상황은 증권계·보험계, 그리고 은행측이 각각 3분해서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보험회사와 은행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재무부의 승인 없이는 증권시장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증시에서 유통되고 있는 수량은 대충 4억 주로 추산됐다.
나는 매일같이 경희증권 고문실로 출근하여 매매작전을 지휘했다. 주당 40전에서 50전 사이의 가격으로 3억 주 이상을 사들여갔다.
동명증권의 강성진 상무에게도 작전상 구좌를 트고 거래를 시작했다.
3월말에는 액면가를 밑돌던 것이 59전까지 뛰어 올랐다.
증권거래소 이사장 윤인상 씨는 증권시장이 과열되고 공급이 달린다는 이유로 당시 재무장관 송인상 씨를 만나 거래소 자본금의 1억원 증자를 요청했다.
송 장관은 증자대신 보험단이 보유하고있는 대증주 3억8천만 주를 증시에 풀어놓도록 지시했다.
필자는 이를 50전대에서 60전선의 가격으로 모조리 사버렸다.
그러자 거래소 측은 다시 재무장관실 문을 노크했고, 재무부는 은행단 보유주식 약 4억2천만 주를 매각하도록 조치했다.
이때 부산을 다녀온 경희증권 우감사 (이석운 씨의 친구)가 자신이 없는 사이 보험단 보유주식을 60전대까지 주고 너무 비싸게 샀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더 이상 매입하지 말고 매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석운 씨의 먼 친척 뻘 되는 25∼26세의 헌병출신 청년을 나의 감시역으로 붙였다.
4촌 동생과 친구를 전무와 감사에 앉혔는데도 못미더워 감시역까지 딸려보내면서 매매를 참견한다는 것은 당초 약속과는 달랐다.
천만금이 생긴다해도 이런 굴욕적인 일은 안 한다고 선언했다.
3주일쯤 쥐고있는데 이석운 사장이 찾아와 자꾸 사들이기만 하면 어쩌냐며 은행단 보유주가 다 나오면 더 사들일 돈도 없다고 시름겨워 했다. 나는 젊은 사람의 간섭을 받아가며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은행단주의 지정가는 70전 이상으로 매각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동명의 강 상무에게 2구좌를 만들어 매입도 하고 매각도 했으나 매입은 주로 경희증권을 통해서 했다. 이씨가 다시 찾아왔다.
한일은행이 보유하고있는 대증주 1억2천만 주는 내놓지 않게 됐다는 소식을 갖고 왔다. 그래도 시중은행 보유 대증주 3억 주가 증시에 나왔으니 10억8천만 주가 유통되고 있는 셈이었다.
치솟던 대증주가 96전까지 오르자 5월11일 새로 취임한 박승준 이사장은 1백%의 증거금을 거래소에 내도록 조치했다.
매수측은 청산거래라 해도 실물거래와 다를바 없어 자금수요가 크게 늘어갔다.
나는 청산거래에서의 건옥을 대부분 수도하여 8억 주를 경희증권 금고에 보관시켜놓고 앞으로의 일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석운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의 채권자들이 대증주를 한번 보자고 하니 이석호 전무를 통해 좀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자기 돈만도 10억원이 넘는다고 했는데 채권자에게 시달리고 있다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석운 씨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일단 이 전무를 통해 8억 주를 싸 보냈다.
이 전무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 손에는 단 한주의 대증주도 들려있지 않았다.
이석운 씨는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 설정해 주겠다고 했으나 채권자들은 3개월 기한으로 주식을 보관하겠다는 주장이어서 최모씨 보관증만 받고 내주었다는 설명이었다. 며칠 후 이씨가 엄청난 소식을 갖고 찾아왔다. 최씨가 수도증권을 통해 보관중인 대증주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3개월 동안 담보물로 맡겨놓은 것을 1주일도 안돼 팔아버리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수도증권 전무 이진옥 씨 등이 최씨 등을 설득하여 96전 하는 대증주를 56전까지 내려 팔고 있는 것이었다.
담보물로 맡겨놓은 주식을 팔라고 증권회사가 부추겨 주가를 폭락시키고 증권계를 혼란에 빠뜨리다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석운 씨는 채권자대표 최모씨 등을 걸어 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최씨와 이 전무, 외무사원 임재동 씨 등은 이 사건과 관련, 형을 받은 것으로 알고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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