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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파업 땐 되레 주가 상승 … 28년 '관행 투쟁' 안 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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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엑센트 등을 만드는 현대차 울산1공장은 거의 매년 파업으로 조업이 중단된다. 올해 임단협은 2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협상이 고비다. [뉴스1]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28일 파업 강도를 높였다. 파업 시간을 지난 주말의 4시간에서 12시간으로 늘렸다. 정규 근무 17시간 중 5시간만 공장이 돌았다. 이에 따른 생산 차질은 5400대, 1100억원에 이른다. 통상임금 문제를 놓고 맞선 노사의 입장은 팽팽하기만 하다. 노조는 확대 적용을, 사측은 법원 판결을 기다리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날 현대차 주가는 3000원(1.3%) 올랐다. 닷새 연속 상승이다.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의 파업 기간 중 현대차 주가는 4.1%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의 두 배가 넘는다. 2012년 파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증권가에선 “파업 때 현대차 주식을 사라”는 조언까지 나온다.

 현대차 노조가 해마다 꺼내 드는 ‘파업 카드’의 유효기간이 끝나가는 조짐이 뚜렷하다. 노사 갈등은 여전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지형이 바뀌면서 생기고 있는 변화다. 지금까지는 ‘무리한 요구→사측의 거부→파업→사측의 수용’이 현대차 임단협의 전형이었다. 노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익의 30% 성과금’ 같은 제안을 해마다 관성처럼 했다. 사측도 파업이 길어지면 적당히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시장의 추격자로서 겨우 붙잡은 소비자가 파업 때문에 발길을 돌리는 건 치명타였기 때문이다. 평균 연봉 1억원의 고임금 구조는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현대차의 덩치가 커지고 맷집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작은 손실은 희석되고, 파업의 영향력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의 생산량은 2008년 279만 대에서 지난해 477만 대로 늘었다. 5년 만에 70% 이상 몸집이 커진 것이다. 기아차를 합치면 연간 800만 대 생산이 눈앞이다. 생산 급증은 해외 공장에서 비롯됐다. 2008년 40%였던 현대차의 해외 생산 비중은 지난해 61%로 높아졌다. 울산공장이 멈춰도 미국·브라질·중국 등에서 차가 척척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해외 공장은 생산성도 높다. 남경문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역설적으로 만성적 파업이 해외 기지 건설의 빌미를 만들어 현대차의 생산 구조를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맷집도 좋아졌다. 현대차의 2분기 영업이익률은 9.2%다. 100원어치 팔면 9원은 남긴다는 얘기다. 주요 업체 중에선 BMW(13.1%)와 도요타(10.8%) 정도만 현대차를 앞선다. 환율 악재에도 이 정도 수치가 나왔다는 것은 파업 같은 단기 위기에 대한 대응력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노동 여건의 변화도 파업의 영향력을 줄였다. 현대차는 지난해 3월 밤샘 근무를 없앴다. 근무 체제는 2교대(8+9시간) 체제가 됐다. 일요일 특근은 사실상 사라졌다. 파업으로 인해 생기는 물리적 공백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노조 설립 후 28년간 쌓인 관행을 단번에 밀어낼 순 없다. 이경훈 노조위원장은 실용파로 꼽히지만 현대차 대의원의 다수는 강경파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현대차는 불법 행위를 한 노조원에 대한 고소·고발을 끝까지 취하하지 않았다. 과거엔 이심전심으로 모른 척해준 사안이다. 올해 협상에서도 현대차 사측이 ‘절대 안 된다’고 밝힌 것이 이 부분이다.

김영훈·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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