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포커스] 러시아인 92% '서방의 경제제재 피부로 못 느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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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냉동 닭고기가 “난 이제 러시아서 필요 없대요, 자기 나라 닭고기가 있대요”라고 슬퍼한다. 러시아 지하철에 나붙은 ‘반(反) 러시아 제재 포스터’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제재에 대항해 이들 나라로 부터 닭고기·돼지고기·쇠고기 등 농산품들을 전면 수입금지시켰는데 이를 풍자한 것이다. [리아노브스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대러 제재를 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의 식료품 수입을 금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한 지시는 ‘국가 이익 수호를 위해…’로 시작한다. 최근 6개월 ‘국가 이익’은 러시아 지배 엘리트와 국민 대다수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다. 경제 제재,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크림 합병 및 그 결과 취해진 대러 제재 같은 이슈는 신문·방송뿐 아니라 가정집 부엌과 흡연실, 버스 정류장에서도 논의 대상이 됐다. 그렇다면 실제로 러시아 국민은 어떻게 제재를 느끼고 있을까.

 지난 8월 15일 전(全)러시아여론조사센터 ‘프치옴’은 ‘대러 제재: 원인과 결과’라는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 대다수는 서방의 대러 제재를 실감하지 못한다.

 제재 효과에 관한 질문에 설문 대상자의 92%는 “전혀 실감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재가 러시아의 미래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15%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주민이었다. “제재가 러시아의 경제·정치 상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사람은 15%였다.

 게다가 응답자 32%는 “대러 제재의 주된 목적은 서방이 러시아의 힘을 약화시키고 러시아의 독자적 대외정책을 응징하며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려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유럽의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이리나는 “러시아가 강하고 튼튼하면 미국도 유럽도 좋을 게 없는 건 당연하다. 러시아가 세력을 키우자 미국과 유럽이 두려워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직접 저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제 제재로 바꾸기 시작했다”며 “나는 이것이 대화를 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이라기보다는 지정학적 핑퐁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사태 악화는 누구도 원치 않는다. 모두 자기가 더 우세하다는 점을 입증해 보여주고 싶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프치옴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 대부분은 대러 제재 조치를 안다. 하지만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5%는 구체적으로 어떤 개인과 기업에 대해 제재가 도입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가까운 시일 안에 제재의 심각한 결과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나는 현재의 제재 수준이 중기적으로 보면 러시아 경제 성장을 연간 0.3% 둔화시킬 것으로 생각한다.” 투자회사 ‘인베스트 카페’의 애널리스트 티무르 니그마툴린의 말이다.

 대러 제재 조치를 취한 국가로 미국을 지목한 사람은 약 70%였다. 설문 대상자 5명 중 한 명은 유럽 전체가 대러 제재 정책에 개입돼 있다고 확신했으며, 응답자 중 20%는 “독일이 대러 제재에 가장 앞장선 유럽 국가”라고 말했다.

  러시아인 대다수는 제재 영향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제재가 각 개인에게 미치는 위험성과 점증하는 압박감을 의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동차회사 톱매니저인 마리나는 “지난 7월 나와 남편은 주택융자를 받아 아파트를 마련하기로 했다. 융자금은 700만 루블(약 2억원)로 연이자가 11.5%였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큰일을 결정하는 동안 제재가 시작됐다. 신청서류를 제출할 무렵에는 이자가 12%가 돼 0.5%를 더 물어야 했다. 700만 루블의 0.5%는 큰돈이다. 결국 제재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지 국가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엘레나 김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全러시아여론조사센터 '프치옴' 설문
"미국이 제재 조치 앞장" 70%
절반 가량은 구체적 내용 몰라
대출이자율 올라, 개인 피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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