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 없는 배 속 '시한폭탄' 50세 이상 정기검진 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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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 천안병원 이석열 흉부외과 교수(오른쪽)가 복부대동맥류 환자에게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채원상 기자

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혈관이 대동맥이다.

가장 큰 혈관인 만큼 가장 많은 양의 혈액이 흐른다. 혈류량이 많기 때문에 혈관 내벽이 약해져 터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이런 일이 내게도 생길 수 있다.

소리 없이 자라는 배 속의 시한폭탄이라 불릴 정도로 무서운 병이 복부대동맥류다.

증상이 없고 환자의 절반 정도는 5년 안에 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원인과 예방·치료법을 알아본다.

대동맥 벽이 얇아지면서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파열되기 쉬운 질환이 대동맥류다. 대동맥이 파열되면 몸속 출혈로 인해 갑작스럽게 통증과 쇼크가 오며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대동맥이 파열되기 전에 발견해 대동맥류를 제거해야 한다. 대동맥류의 75%는 복부대동맥류이고, 나머지는 흉부대동맥류다. 복부대동맥류는 약물로 치료할 수 없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점점 커지다 5년 안에 파열된다.

남성 발병률 여성보다 5배 높아

대동맥류의 증상은 발생 부위와 원인에 따라 다르다. 흉부대동맥류의 경우 어깨·허리·목·배에 통증이 나타난다. 때로는 목이나 팔이 붓기도 하고, 대동맥류가 기도를 눌러 마른기침을 하거나 성대를 움직이는 신경을 눌러 목소리가 변한다. 심지어 식도를 눌러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할 때도 있다.

이에 반해 복부대동맥류의 경우 증상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복부대동맥류로 진단받은 사람의 70~80%는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그러다 정기검진이나 다른 병으로 진찰을 받다가 발견하는 환자가 많다. 배 속에 혹이 만져지거나 복부대동맥류가 주위 장기를 눌러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구토, 요관 폐쇄 증상이 나타난다. 대동맥류의 안쪽엔 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엉긴 핏덩어리가 들어 있다. 그것이 아래쪽으로 옮겨가 동맥 색전증이나 동맥류 혈전증을 일으킨다. 이 경우엔 다리에 찬 느낌이 오거나 통증이 생긴다.

 복부대동맥류의 유병률은 10만 명 중 3명, 많게는 117명까지로 의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5배 더 발생한다. 남성은 50세부터 급격하게 증가해 80세에 가장 많고 이후 빈도가 떨어진다. 여성의 경우 60세 이후 급격히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60세 이상의 5%가 복부대동맥류를 앓는다.

복부대동맥류의 가장 큰 원인은 동맥경화다. 이 밖에 외상, 유전, 동맥염, 선천성 기형, 매독, 곰팡이 감염으로 인해 생길 수 있다. 특히 60대 이상 흡연자로서 고혈압·동맥경화를 앓고 있으면 발병률이 높아지는 고위험군이다. 고위험군에 속하거나 가족 중 복부대동맥류 환자가 있을 경우 남자는 55세, 여자는 60세부터 매년 한 차례 이상 복부초음파검사 같은 정기검진을 하는 게 좋다.

 복부대동맥류 환자는 조기검진 말고는 위험을 피할 방법이 거의 없다. 적절한 조기검진으로 사전에 알아내기만 하면 파열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고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다. 복부대동맥류는 복부초음파검사나 복부CT촬영을 통해 찾아내기 쉽다. 우리나라 사람의 정상 복부대동맥 직경은 2㎝ 안팎이다. 대동맥의 직경이 정상보다 50% 이상 늘어났을 때 복부대동맥류로 진단한다. 일반적으로 대동맥의 직경이 3㎝를 넘으면 복부대동맥류 환자로 본다.

신개념 ‘하이브리드 수술’

평소 건강하게 지냈다는 최상현(가명·66)씨는 복부에서 심한 박동이 느껴져 흉부외과를 찾았다. 정밀검사 결과 직경 5.5㎝의 복부대동맥류가 발견됐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최씨는 곧바로 수술을 받아 복부대동맥류를 치료한 뒤 일상에 복귀했다.

김성진(가명·70)씨는 종합건강검진을 받던 중 복부에 직경 5㎝의 복부대동맥류가 두 개나 발견됐다. 신장동맥 위·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다발성·복잡성 복부대동맥류였다. 김씨 역시 치료 후 현재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복부대동맥류의 기본적인 치료방법은 수술이다. 그러나 환자 대부분이 노인인 데다 다른 질병이 있는 경우도 많아 수술할 때 위험이 따른다. 이 때문에 의료진은 상황을 고려해 치료 시기와 방법을 정한다. 수술은 복부를 절개해 늘어난 대동맥을 제거하고 인조혈관으로 바꾸는 것이다. 복부를 30㎝ 이상 절개하는 수술은 커다란 흉터, 심한 통증, 합병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수술 후 사망률도 5~10%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인조혈관 기술의 발달로 전통적인 절개 수술보다는 최씨가 받은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을 많이 시행한다. 양쪽 사타구니 혈관을 통해 유도관을 넣은 뒤 특수금속 스텐트와 인조혈관이 결합된 스텐트 그라프트를 복부대동맥류가 있는 부위 속에 넣어 늘어난 대동맥을 보강하는 치료법이다.

복부를 절개하지 않기 때문에 흉터가 생기지 않고 수술 후 통증이 없다. 회복 속도도 개복수술에 비해 훨씬 빠르다. 그러나 모든 복부대동맥류에 적용할 수는 없다. 환자의 혈관 상태에 따라 적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김씨처럼 복잡한 복부대동맥류의 경우 ‘하이브리드 수술’을 적용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외과 수술법과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의 장점을 함께 적용하는 것이다. 스텐트를 넣기 힘든 혈관 부위는 수술로 우회로를 만들어 주고, 스텐트 그라프트가 설치 가능한 나머지 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한다. 하이브리드 수술법은 순천향대병원 흉부외과에서 2010년 국내 최초로 대한흉부외과학회에 발표했다.

글=강태우 기자 ktw76@joongang.co.kr,
도움말=이석열 순천향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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