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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진우의 저구마을 편지] 진수성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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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아내가 저녁 지을 쌀을 안쳐놓고는 반찬거리 없다며 망초 캐러 가자고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얼마 전에야 온 들에 널려 있는 망초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짝 데쳐서 된장에 버무려 먹는 그 투박한 맛이 좋아 얼른 아내를 따라 나섰습니다. 여기저기 나물들이 쑥쑥 올라온 밭둑은 그냥 그대로 샐러드 바였습니다.

망초를 캐러 간 사람들이 옆에 난 씀바귀.고들빼기.다래까지 손대고 말았지요.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과 아이들을 따라온 강아지는 술래잡기 하느라 바빴습니다.

밭일을 마치고 저녁 지으러 가는 아낙들 발걸음이 분주해졌습니다. 뒷짐을 진 채 소를 끄는 노인의 굽은 등 뒤로는 벌써 노을이 물들었습니다. 아직도 군불을 지피는 집 굴뚝에서 연기가 느긋하게 피어올랐습니다.

그 연기를 보니 잊었던 시장기가 되살아났습니다. 나물 캐는 재미에 푹 빠진 아내 손을 끌면서 소리쳐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집까지 달리기 경주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부부는 소보다, 지는 해보다 느리게 걸었습니다. 오늘 저녁도 맛있고 풍성할 겁니다. 어디 진수성찬이 따로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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