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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 뮤직박스] '그녀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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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어조는 한없이 나지막해졌다. 언성 한번 높이지 않고 나긋하게 말을 건다.

'그녀에게'에서 식물인간이 된 여인에게 베니그노가 이야기를 하듯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진심으로 담겨 있다.

'비밀의 꽃''라이브 플래시''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알모도바르와 함께 작업했던 음악 감독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음악도 그렇다.

'그녀에게'의 음악은 앞서가거나 카타르시스를 유도하지 않고 두 남자 주인공 베니그노와 마르코의 주변에 편안하게 머무른다.

'그녀에게'의 음악이 정면으로 다가드는 것은 세 개의 공연 장면들에서다. 현대 무용의 거장인 피나 바우쉬의 공연이 '그녀에게'를 열고 닫는다.

눈물을 흘리는 마르코의 모습을 베니그노가 처음 보게 되는 도입부도 '카페 뮐러'공연으로 시작된다. 무대에 의자 수십개가 놓여 있고 두 여인은 두 눈이 먼 것처럼 의자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뛰어다닌다.

남자는 여인이 부딪치지 않게 의자를 치우느라 분주하다. 식물인간이 된 여인들을 돌보는 두 남자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은 공연 위로 헨리 퍼셀의 'The Plaint: O Let Me Weep, For Ever Weep'이 처연하게 흐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르코가 알리샤와 함께 보는 공연은 '마주르카 포고'다. 마드리드. 홍콩.리스본 등 세계의 도시를 모티프로 삼아 작품을 만들어 온 독일 무용가 바우시가 포르투갈 리스본을 주제로 만든 '마주르카 포고'는 삶의 환희와 힘이 넘친다.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인 파두와 남미의 탱고.삼바 등이 어우러지는 '마주르카 포고'. 이 무용극과 함께 나오는 음악은 역동적인 바우의 '라켈(Raquel)'이다. 이 음악은 알모도바르의 시선이 낙관적으로 변했음을 증언한다.

마르코는 '카페 뮐러'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다시 브라질의 위대한 뮤지션 카에타노 벨로소가 부른 '쿠쿠루쿠쿠 팔로마'를 들으며 다시 한번 눈물을 떨군다. '세상의 모든 저녁'을 담은 것처럼 광대하고도 미려한 벨로소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눈물이 흐를 것이다.

이 노래는 이전에 왕자웨이(王家衛)의 '해피 투게더'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이과수 폭포의 느린 영상과 함께 흐르는 '쿠쿠루쿠쿠 팔로마'. 세상이 거부하는 동성애자인 그들의 운명도 뇌사 상태에 빠진 여자들을 돌보는 '그녀에게'의 남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그 길을 걸어서 우리는 어딘가로 향한다. 알모도바르가 말하는 대로라면 아마도 '마주르카 포고'의 생명의 세계로.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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