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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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25가 난 이듬해 우리는 가까스로 중학에 진학을 하였다. 그러나 학교 교사라는 것이 산비탈에 천막을 친 가 교사였다. 전쟁은 아직도 치열하였으며 전선에서 무수히 부상을 입어 오는 상이군인들을 위해 우리의 본 교사는 육군 병원이 되어 있었다.
우리 친구들은 산비탈 멀리에서 동경의 눈길로 본 교사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들어가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더한층 웅장하게 느껴지는 그 건물에 감탄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문에도 후문에도 군인이 보초를 서있는 그 건물이나 교정에서는 항시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그랬기 때문에 멋진 교사에 매혹을 당하면서도 감히 가까이 갈 엄두가 안 났다.
4월 어느 날, 병원 앞을 지나서 산비탈을 오르던 우리들은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폐원처럼 방치되어있는 학교의 뜰에 희디흰 꽃을 달고 섰는 실로 우아한 꽃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들은 눈을 비비며 보고 또 보았다. 분명 꽃이었다. 그 나무는 비극적인 병원의 뜰을 환히 밝혀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두려움으로 움츠러져 있었던 우리들 마음에 무한한 위로를 주는 것이었다. 정말 기적을 보는 듯한 감격이었다. 그 흰 꽃이 바로 목련이었다.
이 감동적인 추억 때문에 나는 나의 좁은 마당에 목련 한 그루를 심었다. 10여년 전에 회초리만한 묘목을 갖다 심은 것이 지금은 눈부신 화관을 쓴듯 몇백 송이의 꽃봉오리가 벙그는 한참 당년의 훤칠한 나무로 자라났다.
해마다 목련이 피는 적이면 어린 시절의 티없던 기쁨이 되살아난다. 아아, 나에게 삶의 환희를 일깨워 준 꽃! 그 청초한 모습은 옛날과 다름없이 나의 가슴을 뛰놀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목련꽃은 피었다. 오묘한 섭리를 헤아리며 우러러보는 나뭇가지에는 이제 막 피어나는 꽃, 활짝 핀 꽃, 이미 한잎씩 이울고 있는 꽃들이 한데 어우러져 미의 제전을 별이고 있다. 그것은 흡사 동화의 나라 왕자님이 사시는 궁전에 켜인. 신비한 샹들리에처럼 흔들린다.
은은한 그 그늘에 들면 내 마음은 잠시 생활의 슬픔이나 거리의 소음 따위는 저 만큼 멀리 잊어버리게 된다. 【허영자 <시인·성신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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