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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장관들, 규제개혁 시늉만 내다 말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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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로 예정했던 규제개혁장관회의를 무기 연기한 이유를 2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밝혔다고 한다. 요지는 예상대로였다. ‘매번 회의만 하면 뭐하나. 일단 1차 회의 때 제기된 문제를 먼저 푼 뒤에 2차 회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차 규제개혁 회의를 ‘끝장 토론’이라며 장장 7시간에 걸쳐 했는데 2차 회의를 열려고 보니 5개월여가 흐르는 동안 당시 지적했던 문제들 중 제대로 풀린 게 거의 없었다는 반성이다.

 사실 이런 징후는 1차 회의가 끝나자마자 곳곳에서 이미 감지됐다. 지난 6월 국무조정실이 청와대에 보고한 ‘규제개혁 추진 상황 및 향후 계획’을 보면 1차 회의 후 규제신문고를 통해 5262건의 규제 민원이 쏟아졌지만 수용된 건 940건에 불과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이를 빌미로 각 부처는 안전 우선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규제개혁의 목소리는 아예 묻혔다.

 원인은 갖가지다.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 이익 집단의 반발, 국회의 발목 잡기…. 이런 것들은 익히 예상됐던 바다. 문제는 이런 장애를 빌미로 각 부처마저 손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7대 유망 서비스업 활성화 과제 135개 중 112개(83%)는 국회에서 관련 법을 제·개정하지 않아도 추진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관이 적극적으로 시행령이나 규칙 같은 것을 개정했으면 가능할 것도 안 했다는 얘기다. 이래서야 대통령이 아무리 의지를 갖고 독려한들 규제개혁은 난망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통령이 “보여주기식 회의가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고 질타한 것 아니겠나.

 현재 중앙부처 등록 규제는 모두 1만5326건으로 지난해보다 275건, 연초에 비해 44건 늘어났다. 지난주 국무회의는 규제비용총량제를 골자로 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나름 회의와 제도 정비는 열심히 하는데 현장에서의 성과는 제대로 못 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대통령의 닦달에 못 이긴 척 시늉만 내는 장관들이 문제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