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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은 뒷전…겉치레에 치중"『사치품』같아진 학용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학용품이 지나치게 패션화하고 있다. 요란한 원색의장(의장)과 불필요한 장식, 복잡한 구조로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유행상품으로 변질하고 있으나 질은 겉치레와 비교해 훨씬 떨어져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 때문에 어린이들은 필요이상으로 많은 학용품을 경쟁적으로 가지고 다니며 장난감처럼 함부로 쓰고 쉽게 버리는 낭비풍조에 젖고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이 같은 학용품의 지나친 유행상품화가 어린이들의 인격형성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친다고 우려를 나타내고있다.
소리내며 열리는 다이얼식 열쇠 필통
꽃 모양·동물모양…안 지워지는 지우개
남녀나체그림이 새겨진 중고생노트도

<화려한 의장>
필통·노트·책받침·책 씌우개 등 각종 학용품들은 갖가지 화려한 원색그림으로 어린이들의 눈길을 끈다. 그림은 한결같이 TV만화영화나 동화의 주인공들. 로봇·마징거Z·케산·윈더우먼·캔디·짜콩·슈퍼맨 등이 꼬마들의 상상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색깔은 고상한 중간색이 거의 없으며 3원색을 주로한 극채색이다. 그러나 모양에 비해 질은 형편없어 자칫하면 부서지기 일쑤다.

<너무 많은 장식>
지우개의 경우 연필같이 생긴 것, 꽃 모양. 네모모양. 동물모양 등 갖가지 모양에 원색적인 그림이 그려진 것은 물론 1개의 지우개에 3색이 들어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들 지우개는 한결같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노트에는 페이지마다 그림이 있는 것, 그라프 눈금이 그려진 것도 많다.

<복잡한 구조>
필통의 경우 자석이 사용된 것, 지퍼가 달린 것, 원더치식 단추가 있는 것,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 심지어 다이얼식 열쇠가 달린 것까지 있어 학용품인지 장난감인지 구분이 모호한 것도 있다.

<나체그림 노트>
일부 중·고등학교 주변문방구점에서는 노트표지의 조각그림을 빼면 남녀의 나체가 그려진 해괴한 노트가 나들고 있다. 이 노트를 문방구점에서는 겉 표지로 살짝 가려 팔고있다.

<낭비풍조>
이 같은 유행상품화의 영향으로 어린이들은 학용품을 함부로 쓰고 쉽게 버린다. 대부분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5∼10자루의 연필과 2개 이상4∼5개의 지우개, 세모자·큰 세모자 등 각종 자, 색연필, 크레파스 외에 12색의 사인펜·볼펜 등을 가지고 다닌다.
요즘에는 국민학교 어린이들 사이에 샤프펜슬 사용이 유행하고 있다. 1개에 5천원 이상인 샤프펜슬은 연필 깎는 수고가 절약되는 잇점은 있으나 심이 너무 많이 나와 잘 부러지거나 장난 삼아 가지고 놀며 심을 부러뜨려 결과적으로 낭비 풍조를 빚고있다.
서울 영동Y국민학교 3학년모반의 경우 63명 어린이 가운데 2∼3명을 빼고 모두가 외제 자동식 연필깎이를 갖고 있다. 연필깎이는 수동식 국산이 6천5백원, 배터리를 쓰는 자동식이 1만원이나 이 학교어린이들은 대부분이 2만5천원 짜리 일제나 최고 4만원까지 하는 미제 전기 모더식 자동 연필깎이를 가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TV와 함께 이 같은 학용품의 영향으로 자연보다는 인공적인 것에 더 친근감을 나타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김재은 교수(교육학)가 최근 모 국민학교 상급학년 어린이60명을 대상으로 아무나 그리고 싶은 사람을 그리게 한 실험결과여자어린이는 90%가 캔디를. 남자어린이는 로봇을 그려냈다. 이와 함께 화려한 인쇄는 학용품 값을 올리는 요인으로도 지적된다고 한국소비자단체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노트 값은 2년 전에 비해 2배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의 의견>
서울대 정원식 교수(교육학)는 『어린이의 눈길을 끌기 위한 학용품의 컬러화는 나무랄 수 없지만 학용품은 그 자체가 교육의 도구인 만큼 근검절약의 생활 태도를 익힐 수 있도록 실용적이고 견고하게 만들어져야한다』고 말하고 지나친 유행상품화는 자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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