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시설·의사의 도시편중·물가 앞지르는 진료비 상승 값싸고 고른 의료혜택 받을 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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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모든 국민에게 손쉽고 싼 양질의 의료혜택을 받게 하는 것은 복지국가건설을 위한 기본목표의 하나다. 그러나 지금의 의료체계로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의사·병원의 지역적 편중, 의료보험의 불균형, 인적·물적인 의료자원의 비효율적 운영 등은 의료혜택의 올바른 전달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보건의 달」을 맞아 지금의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는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취급해온 연세대의대 김일순 교수에게 알아본다.
현재의 의료전달체계는 완전히 자유경쟁에 맡겨져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전체인구의 20%를 조금 넘는 서울에 전체 의사의 44·8%가 편중되는 등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은 극심하다.
지방에는 법정의료원도 채우지 못해 야단인 반면 도시에서는 환자 끌기 경쟁까지 나타나는 실정이다.
병원·종합병원의 81·3%, 의사의 89·4%가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보사무가 어쩔 수 없이 벽지의 간호원·조산원에게 ▲기본적 진찰 및 검사 ▲의약품 투여 등 8개항의 진료행위를 조건부로 허용하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의료시설도 균형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 지금의 병원실태를 보면 종합병원·일반의원은 많으나 중간급의 병원은 상대적으로 적어 싸고도 질 좋은 의료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지난 70년에서 79년 사이에 종합병원은 12개에서 70개로 급증했으나 병원은 2백20개에서 2백26개로 고작 6개가 늘어났을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너무 과도한 전문의의 양성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대졸업생의 95%가 전문의교육을 받았다.
실제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전과를 모두 담당하는 일반의 이나 현재 일선의사의 60%는 전문의로 구성되어있다.
일반 의가 맡아야 할 의원급에서도 전문의의 간판을 달고 단독전문의원으로 개업하는 게 태반이다.
전문의는 한정된 영역의 지식과 기술을 연마한 의사이므로 일반의와의 기능분담이 중요하다.
일반의는 보다 예방적인 측면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고 보다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가 요구될 때 환자가 올바른 전문의를 찾도록 할 수 있다.
지금처럼 환자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판단해 해당 병원을 찾아야하는 실정에서는 전문의를 찾기보다는 각과가 모두 있는 종합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또 전문의 심의 교육으로 일반의에 대한 교육이 부실해 의료인에 대한 불신현상도 가져왔다.
대한의학협회가 조사한 『의료전달체계의 수립 및 개선안』에 따르면 『우리 나라 의사는 전문의와 비전문의가 있을 뿐이다. 수준과 능력이 있는 일반의의 양성이 무시돼 충분한 수련과 훈련을 받지 못하고 개업하는 의사가 많았다. 이것은 의원급의 의료수준에 큰 차이를 가져와 의료인의 사회적 이미지가 나쁘게 형성되었고 환자를 필요이상으로 병원으로 몰리게 했다』고 지적하고있다.
이외에 의료보험도 상당한 문제와 모순을 안고있다. 현재의 의료보험체재에서는 저소득층이 오히려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기가 힘들다. 보험에 들지 못한 저소득층 및 농민은 보험가입자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진료비를 물어 저소득자가 상위 소득자의 진료비를 부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이점은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없으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대한 몇 가지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다.
보건의료와 80%는 민간이 담당하고 있으므로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세제혜택 및 행정적 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 또 지금의 의료전달체계는 의료기관과 환자의 분산이 안돼 의료자원이 체계적·효율적으로 이용되지 못하므로 의료기관과 인력의 적합한 기능분담이 시급하다.
개선방안의 하나는 l차 진료와 2차 진료를 담당하는 기관을 제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큰 병원이 경쟁적으로 초진외래환자(병원수입의 25∼40%)를 받아들이는 것은 재고되어야한다.
영국의 경우 1, 2차 진로구분이 확연해 1차는 일반의가, 2차는 전문의가 진료하도록 되어있다.
1차 진료체계가 확립되려면 의원의 수준향상이 뒤따라야 하므로 시설과 의료시혜의 표준화와 가정의제도가 도입되어야한다.
또 현재의 의료전달체계로는 의료비의 급격한 상승을 막을 수 없다. 의료비의 상승률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앞지르고 있다. 이미 의료비가 GNP(국민총생산)의 3·5%를 넘어서 일반국민의 지불능력을 불안하게 하고있는 형편이다.
의료전달체계에 따라 이 비율은 크게 달라지는데 미국의 경우 진료비는 GNP의 10%이나 영국은 5%밖에 안 된다.
보험의료비 지급방식도 의원과 병원을 나누어 실시해야한다.
의원급에서는 지역주민을 등록시켜 진료를 받은 사람 수에 따라 표준수가를 정하는 인두제 도입이 바람직하다.
이 제도는 의료비에 대한 마찰을 줄이고 과잉진료가 예방된다.
병원 급에서는 질병당 포괄수가를 적용, 수가의 단일화도 꾀해 볼 수 있다. <장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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