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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항생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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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페니실린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처칠」은 2차대전의 영웅이 되지 못한채 폐렴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6·25전쟁이 가져온 갖가지 질병의 고통을 다소나마 덜어준 것도 페니실린이었다. 구호의 약품으로 던져진 하얀 액체의 곰팡이 균이 가져온 치료혁명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70년에야 한국「화이자」와 뒤이어 종근당제약에서 미생물발효에 의해 처음으로 테트라사이클린이란 항생제를 자체생산하기 시작했으며 73년에 페니실린의 기초원료를 서울약품에서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항생제의 대량생산이 시작된지 30여년만의 일이다. 우리의 제약기술 진보는 이처럼 더뎠다.
우리나라 약업계에 종사하던 몇몇사람들은 60∼70년대에 독립회사들을 만들어 외국으로부터 치료약 원료들을 들여와 이를 제제해 팔았다. 누구나 쉽게 약을 구입할 수 있다는 독특한 유통구조 때문에 소화제와 드링크류를 제치고 해마다 항생체가 판매에서 최고액을 기록해왔다.
제약회사 경영자들은 구태여 기술을 개발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거니와 기술부문에 투자할자본능력도 없었다. 대부분의 제약회사가 외국의 유명회사와 기술제휴를 하는 것은 노하우를 받아들이자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원료의 완전공급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누구나 항생제를 복용한다. 단순한 감기나 설사 증세에 이르기까지. 약3백여종류가 넘는 항생제 가운데 해독이 적은 페니실린과 테트라사이클린·콜르로마이세틴등이 시장을 휩쓸었다.
이런 약품들은 가끔 과민반응을 일으켜 심하면 쇼크사로까지 몰고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62년 미국 「릴리」연구소는 오랜 연구끝에 세파계의 새로운 항생제를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페니실린은 균이 더이상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소극적인 항균작용을 하고 있지만 세파계는 균자체를 뚫고 들어가 파괴해버리는 놀랄만한 효능을 보였다.
더우기 세파계는 페니실린처럼 약을 자주 쓸수록 치료효과가 떨어지는 내성률이 상당히 낮아 FDA의 판매승인이 떨어진 70년부터 성장상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각종약품은 6천5백57억원어치. 항생제는 전체의 20%인 1천3백억원으로 역시 최고의 판매액수였다.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이 기업의 주가를 높이는 기폭제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작년에 동아제약·영진약품·유한양행등 5대 메이커가 기술개발에 투자한 돈은 매출액의2%수준으로 다른 산업분야보다 기술투자비중이 높다.
그러나 매출액의 4∼6%를 투자하는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요원하다. 종근당은 지난6년 동안 45억원을 들여 연구해왔던 리핌프신이란 항생제(결핵치료용)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제약시장을 석권, 경쟁회사에 기술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제약기술의 요체는 발효에 있었다.
선진국들이 반도체공업의 노하우를 특급비밀로 보호하는 이상으로 발효기술에관한 정보유출도 폐쇄되고 있다. 종근당기술개발팀은 땅콩과 전분등 20여가지 물질을 섞어 가장 적합한 미생물의 배양조건을 찾아내는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지금까지 선진국으로부터 항생제원료등을 수입, 이를 합성해서 약품을 만들어냈던 우리나라 제약회사 가운데 한국 「화이자」와 동명산업·종근당등 3개회사는 자체 발효기술에 의해 부가가치가 높은 세파계의 항생제 개발을 서두르고 장차 해외수출도 꿈꾸고 있다. 이들 제약회사외에 식품공업분야에서 발효기술을 익혀온 제일제당이 세파계항생제 (세파로스프린) 원료의 약품제조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일부 석유화학업체도 의약품사업에의 진입문제를 검토하고 있어 세파제품을 둘러싼 기술개발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제약업계의 발전은 미국·「유럽」의 경우 포도주와 치즈의 발효기술에 힘입은바 크지만 김치와 간장·된장에서부터 주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술개발력이 완전침체된 우리나라 에서는 이것이 의약품 원료산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미국의 섬유회사인 「뒤퐁」이나 화학회사인「몬산토」, 일본의 일본화학등 섬유화학·식품회사들은 항생제를 포함한 일반의약품의 원료와 중간제품제조에 참여, 막대한 수익을 기록했다. 작년의 세파계 항생물질의 판매액은 5억3천만달러. 발효기술의 위력은 이처럼 대단했다.
항생제 세파로스프린 생산으로 제약회사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는 미국「릴리」사(전매장액의 40%차지)의 제조기술에 관한 특허가 79년에 끝났다. 이에따라 작년부터 세계제약시강에서는 세파계항생재의 개발전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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