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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광섬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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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0.1mm의 투명한 유리섬유.
머리카락과 같이 가는 유리섬유를 통해 당신의 목소리를 실어 보낸다. 부러지기는커녕 강철로 만든 철사보다 더 질기다. 단 한 가닥의 섬유를 통해 수만명이 동시에 통화할 수 있으며 목소리도 섞이지 않는다.
79년 9월. 태평로 체신부 청사 한쪽 귀퉁이 사무실이 촛불로 밝혀져 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케이크 주변에 몰려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소파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칠판에는「축! 광통신 시험성공」이라고 씌어 있었다.
3개월 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표정이 굳은 채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아, 여보세요! 중앙전화국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나오자 대통령은 떨고 있는 기술자들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光섬유를 통한 첫 번째 시험통화의 성공은 1876년 미국「그레이엄·벨」의 인류최초의 전화실험과 똑같이 감격어린 것이었다. 이 사무실은 한국통신연구소(현 전기통신연구소)의 연구실이었다.
통신기술의 빈곤시대인 60년대에 전화기름 생산했던 금성통신·금성전기와 뒤이어 대한전선· 광진전자등이 개년부터 광섬유케이블과 전화국에 놓일 광단국장치를 만들기 위해 제조시절을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기업별로 별도의 연구소도 운영했다.
이들 4개 업체는, 금년 10월에 한국전기통신기술연구소와 함께 서울당산전화국에서부터 반포전화국 사이를 잇는 길이 11.36km의 광섬유케이블에 의한 첫 상용시험에 들어간다.
한국전력은 이미 작년에 부산지점과 남부산변전소 사이에 광통신 시설을 설치, 시험중이며 서울본사와 분리되어 있는 영업부서 사이에도 새 통신시설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 여보세요!』라고 말하면 이 목소리는 전기신호로 바뀌어지고 레이저광이 광섬유를 따라 빠른 속도로 이를 전달함으로써 통화가 된다.
현재의 값비싼 구리선이 1천회선 설치된 곳이라면 광섬유로 만든 케이블은 똑같은 굵기로 10만회선을 설치할 수 있다.
지금까지 2개의 구리선으로는 24통화를 동시에 할 수 있지만 광섬유케이블은 한 가닥에 몇 만 통화를 할 수 있다. 상·하수도와 전선으로 지상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땅 속이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광통신은 미래의 전송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과 부산사이에 연필굵기만한 光섬유케이블을 놓고도 정보량은 현재보다 10배나 증가시킬 수 있다.
70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광섬유개발이 성공한 이래 미국의 통신회사인 AT&T와 GTE등은「캘리포니아」등 일부 지역에서 실용화하고 있다.
영국은 주요 도시와 시골을 잇는 지방통신망을 부분적으로 광섬유로 바꾸었다. 일본의 경우 12개 지역에 총 길이 l백7km에 이르는 광섬유 케이블이 전송수단으로 이미 사용되고 있다.
바다에 대한 도전도 시작되었다. 영국이 작년에 광섬유에 의한 해저 전화선 실험에 성공한 뒤를 이어 이제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전화선을 유리섬유로 통째로 바꾸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에는 2백 군데에 25만km에 이르는 해저 케이블이 깔려 있으며 통화자의 목소리가 분명히 들리도록 하기 위한 증폭장치(중계기)가 5km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광통신의 경우 10km 또는 최고 1백km 이내에서도 중계기가 필요 없다. 이에 따른 비용절감도 엄청나다.
위성통신이 일반 전화통신보다 값싸고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제는 광섬유통신이 위성통신 위에 올라설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 변두리 공중전화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통화가 가능하다. 농어촌 벽지와의 전화도 「아프리카」와의 장거리 전화 이상으로 짜증스러운 것은 시설이 낡았다는 이유 외에 전파장애를 많이 받기 때문. 광섬유통신은 이러한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있다.
우리 기술로는 광섬유의 원료가 되는 지름 20mm의 순수하고 투명한 유리관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미국·일본 등에서 수입, 0.1mm의 광섬유를 만들어내고 있다. 6개의 유리선이 모인 가느다란 광섬유케이블은 6백72명이 동시에 통화할 수 있는 용량이지만 미국에서는 현재의 1만3천회선과 똑같은 통화능력을 가진 광섬유케이블을 만들어 냈다. 통신 분야에 우리의 목소리를 실어다주는 광(레이저)을 이용한 전자혁명이 침투한 결과다.<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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