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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이완구, 삼세번에 득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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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자갈치시장의 박근혜 대통령, 광화문 단식농성장의 문재인 의원. 조금 시간이 흐르면 2014년 대한민국의 가장 답답한 두 장면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지난 주말 박 대통령은 부산에 내려가 자갈치시장을 돌았다. 이날 40일째 단식농성하던 ‘유민 아빠’가 병원에 실려 갔다. 문 의원은 청남방셔츠 차림으로 광화문 단식농성장을 지켰다. 흰 턱수염이 수북했다.

 만약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면….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얼마 멀지도 않은 광화문으로 나와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을 만나고, 문 의원이 추석 경기를 살피러 자갈치시장 같은 곳을 돌고 있었다면 지금쯤은 모든 이가 밥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세월호특별법 정국은 5명에게 달려 있다. 박근혜·문재인·김무성·이완구·박영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 5명이 그러나 이 문제 하나를 털지 못하고 있다. 5인 중 맨 앞에 적은 두 정치리더에 대한 기대부터 접어야 할지 모른다. 청와대는 세월호특별법은 국회 문제라고 하지만 이미 새누리당에서도 “세월호법 해결 없인 한 발짝도 못 나가는데, (해결 주체가) 대통령 따로 있고 국회의원 따로 있느냐”(정병국 의원)는 지적이 나온다. 문 의원이 단식을 말리러 갔다 농성장에 눌러앉은 건 적어도 대선 때 얻은 1470만 표의 무게에 맞는 행동이 아니다.

 어느 누구의 고집이 더 완강한가 겨루는 것… 정치가 아니다.

 5인 가운데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미 할 만큼 했다. 당내 강경세력으로부터 유가족 의사를 무시했네 어쩌네 하는 독박을 뒤집어쓰면서도 정치력을 발휘해 보려 했다. 이번엔 여야·유가족 3자협의체를 제안했다. 국회를 전면 보이콧한다는 협박을 포장에 둘렀으니 여당으로선 어처구니없겠지만 사실은 SOS다. 강경파에 둘러싸인 박영선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여당이 유족과 대화해 돌파구를 열어 주는 것뿐이다.

 결국 5인 중 남은 김무성·이완구 조합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마지막 기대를 건다. 철도파업을 푼 김무성 대표. 취임 후 혁신보수를 기치로 걸었다.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전향적·대승적으로 풀면 혁신보수란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 이완구 원내대표. 이미 문제를 두 번 해결할 뻔했다. 하지만 해결이 안 된 게 현실이니 또 한 번 일어서야 한다.

 25일 이완구·유가족 회동이 별 소득은 없었다지만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반갑다.

 박영선·유가족 회동이 있었을 때 나온 대화는 참고할 만하다. 여당 몫 특검 추천위원 2명을 야당과 유족 동의를 구하는 카드를 놓고 유가족들이 박영선에게 요청한 내용이다.

 ▶유가족 대표=“2명을 우리가 추천한다고 하세요.”

 ▶유가족 부대표=“인사청문회 봤죠? 떨어뜨리면 계속 (여권이) 올려 결국 박근혜 정부 사람이 됩니다.”

 ▶유가족 대표=“우리가 추천할 테니 새누리당이 비토(동의)하라고 하세요. 그렇게 바꾸시면 동의할게요.”

 수사권·기소권을 특검이 갖느냐 진상조사기구가 갖느냐, 특검 추천권을 갖느냐 동의권을 갖느냐가 그리 큰 차이일까. 그거나 그거나 뭐가 그리 다른가. 대한민국을 멈춰세울 만큼 큰 문제인가.

 문제의 핵심은 ‘불신(不信)’이다. 정부가 ‘적’이라는 불신 말이다. 불신만 걷어내면 의외로 쉽게 풀릴지 모른다. 이 불신을 제거하는 게 김무성·이완구의 몫이다.

 유가족들은 진작부터 여당과의 대화를 원했다. 왜일까. 유가족들의 시계는 오늘도 세월호 그날, 4월 16일에 머물러 있다. 아니면 이상하다. 그러나 여당은 4월 16일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어쩌면 유가족들의 거듭된 퇴짜와 대화 요구는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는 몸부림이었을 수 있다.

 마음의 합을 모아 나가는 게 정치다. 마음이 쪼개지는 건 막아야 한다. 김무성·이완구 조합만이 박 대통령과 유가족들이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고, 문 의원이 밥을 먹게 할 수 있다.

 더도 덜도 없이 삼세번이다. 삼세번에 득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