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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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시인은 겨울이 오는것을 보고 성급하게 봄을 기다린다.
-내 입술 통해 아직 잠깨지 않은 세상 향해/예언자의 나팔소리 되라! 오 바람이여/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셀리」의『서풍송』의 마지막 구절이다
여기서의 서풍은 편서풍으로 위도 0도에서 30도사이에부는바람, 겨울엔 강하고 여름엔 약하다.
-네 누이 파란 봄은/꿈꾸는 대지위에 나팔을 불어대어 양떼처럼 향기로운 꽃봉오리 대기속으로 몰아기르고.
같은 시에서 봄에 대한 상상의 나래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그런데도 예년보다 닷새가량 앞당겨 꽂소식이 전해지는 것은 요즘의 날씨가 푸근했던 탓인가. 남녘 제주에는 이미 벚꽃이피기 시작해 모레쯤에는 만개하리란 소식이다.
「셀리」가 방낭지「이탈리아」에서 봄을 기다리다 30세의 나이로 요절했듯이 이육사도 북경의 감옥에서 30세로 죽었다.
-북쪽「툰드라」에도 찬 새벽은/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자거려/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기다리나니. (꽃)
-푸른 하늘에 닿을둣이/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교목)
절망에 찬 육사는 부르짖었으나 계절은 무정해서 창경원의 벚꽃은 한창 물을 머금고 부풀기 시작했다.
봄의 전령은 제주도의 남단에서 시작된다. 서귀포의 진달래·한라산의 유채화가 모두 만개했고 서울의 풍년화·산수유도 꽃망울이 터졌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인도의「칼리다사」처럼 활기찰수도 있다.
-봄은 사랑의 활을 메고서/늠름한 병정처럼 찾아오는데.
그러나 고금의 시인들이 오히려 봄에서 우수를 느낌은 웬일일까.
-거리에 비 내리듯/내 가슴에 눈물 흐르네/내 가슴에 스며드는/이 시름은 무엇이리.(거리에 비내리듯)
「프랑스」의 「P·베를렌」은 이 우수가 사랑도 미음도 아니라고 독백한다.
봄의 우수는 동양에도 있다. 당나라 가지의 시.
-봄바람은 내 시름을 불어가지 못하고/봄날은 도리어 내시름을 길게한다.
그래서 꽃피는것조차 마다하는 시인이 서양에도 있나보다. 독일의「W·헤르츠」.
-가벼이 흘러가는 봄구름/아 오랜 옛날에 빚 바랜/젊음/봄철의 꽃술이여/나를 홀려 무엇하려나/아득한 금빚 하늘이 웃음짓는데. (꽃이 만발한 나무아래) 1981년의 새봄올 맞는 한국인들의 심정은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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