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작년 한해동안 2백36건을 적발 중독 심할땐 정신분열증 나타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백색의공포」「히로뽕」이 우리사회에도 깊은뿌리를 내리고 있다.2차대전 직후 일본에서 독버섯처림 창궐했던「히로뽕」은 60년대 후반기 한국에 상륙,밀제조·밀매가 성행하다가 이젠 중독자까지 상당수 적발되고 있다.아편·대마초에 이어「제3의마약」이라고불리는「히르뽕」은 접대부·폭력배·도박꾼들을 중심으로 중독자가 늘어나다가 최근에 이르러 대학생·연예인·가정주부등에이르기까지 그 대상을 넓혀가고있다. 최근 검찰에 적발된「히로뽕」밀매조직사건을 계기로「히로뽕」의 실태와 문제점을 가려본다.

<사회부>

<「히로뽕」이란>
「히로뽕」은 무색무취의 결정체 얼핏 보면 조미료와 비슷하다.
「히로뿡」은 기침약의 윈료인 염산「애페드린」을 수소처리하여 만든 것으로 원래 각성제로 쓰였다.
「히로뽕」의 종류는「암폐타민」등 모두 11가지. 「히로뽕」이란 이름은 2차대전 직후 일본의 대일본제약회사에서 만든 「암페타민」의 상표이름 이었으나 대중화되면서 이계롱의 각성제를「히로뽕」이라고 부르게 됐다.
「히로뽕」이 각성제로 처음 등장한것은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과학자나 종업원들이 야간 각업때 잠을 쫒기위해 처음 사용앴다.
그러나 이때 독일에서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이이를 복용했으며 상습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사화문제가 되지않았다.
그뒤 2차대전이 터지면서 일본군대에서「히로뽕」을 대량으로 생산,사용했다.

<일본군서 한때 각성제로사용>
일본군들은 당시「히로뽕」이 공포의 약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군수공장 종업원은 물론 야간 초범들에가 상습적으로 복용시켰다.
또 특공대원들에게는 공포감을 없애기위해 반강제적으로 투약했다.
이같이 군수용으로 비축되었던「히로뽕」이 전후 대략으로 시중에 유출되면서 일반 공장 야간종업월은물론 문인·예슬가·학생까지도 단순한 각성제로 오인, 애용(?) 했었다.
48년 일본은「히로뽕」의 해독증세를 뒤늦게 발견,일대 사희문제가 되자 모든 제약회사들에 재조중지령을 내렸으며 50년 「각성제취체법」을 재정, 밀제조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미 일본사회에 뿌리내린「히로뽕」사범은쉽게 근절되지않아 54년5만5천6백64명,53년 3만2천1백40명이 적발되는등 기승을 부렸다.
이에 일본점부는 총리부안에 약물남용대책븐부를 절치, 걸저한 단속믈 펴 .60년대 들면서 점차 자취를감추는듯 했으나 70년대 들어 다시 고개를들어 78년1만8천27명, 79년 1만8천5백52명이 적발됐었다.

<우리나라의실태>
우리나라에서는 한일국교정상화가이루어진 65년 부산에서 류모씨등밀조범 5명이 처음 적발됐으나 당시에는 처별규정이 없어 처벌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그뒤 68년 부산에서재일교포 김모씨(사망)가대령으로 생산, 일본에 밀수출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뒤에야 습관성의약품관리법에 포하,규제대강에올라단속이 시작했다.
그러나『맵고 짠 음식을 먹는 한국인들에게는「히로뽕」이 듣지않는다』는 것이 정설처림 알려져 복용자는 거의 없었으나 75년이후 위안부·「호스티스」·노름꾼·폭력배들 사이에서 복용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78년 한해동안 부산지검에 검거된 중독자는 79명,79년에는 1백45명으로 늘어났었다.
검거된 중독자 가운데 대학생·가정주부까지 끼어있어「히로뽕」은 이제「강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에 띨어진 불이됐다.
아편등 전통적인 마약은 70년 9백4명이 적발했으나 지난해 35명에 불과할 정도로 자취를 감추었고 대마초 역시 76∼77년의 짐중단속으로 점차 고개를 숙이고 있으나「히로뽕」만은 아직 고삐가 잡히지 않고있다(도표참조). ·
현재「히로뽕」1kg중의 값은 국내에서 5백만원이지만 일본에 건너갈 경우 도매는 1억 「앤」,소매는2억「엔」에 비밀지하조직을 롱해 거래되고있다.

<해독>
「히로뽕」은 큰골(대뇌)과 뇌피질하를자극,중추신경과 말초신경을 흥분시킨다.
즉 건강체가 소량의「히로뽕」을 섭취했을때 일시적으로 피로감·권태감·불쾌감·숙춰등을잊게되고 사고력과 판단력이 높아져 작업능률과 성(성)기능을 올릴수 있다.

<1kg에5백만원…일선2억엔>
성인의경우 3mg의「히로뽕」을 북용헸을때 15분∼1시간뒤에 약효가 나타나 3∼9시간 계속되며 정맥주사로 루약했을 때는 약간 빨라 5∼30분만에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같은 효과는「일시적인 환각상태」에 불과한 것으로 약효가 띨어지면 그동안 쌍였뎐 피로감·불쾌감등이 한꺼번에 밀려와 힘과정신이 빠진속빈 사람이 되고만다.
행복감과 황홀감에서 깨어났을때 오는 무기력상태라 할수 있다.
개인별로 체격· 건강상태등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보통 3개월쯤 계속 복용· 투약하면 중독중세를 보인다.
사용량도 초기엔 1회 3호내외이던 것이 점차 늘어 중독자는 20∼30짝을.한꺼번에 섭취한다.
중독자의 일반적인 추세는 두통·설사·불면증·고갈증·의식감튀·우울증등이며심하면정신분열증까지일으킨다.
중독상태에서 일으키는 범죄는 살인·방화·강간등대체로 강력사건들이다.
일본의 경우 중독자가 의사에게 치료를 받다가 갑자기『의사가 주사약에 독약물 넣어 죽이려한다』는 맘상에 사로잡혀 의사를칼로 찔러 숨지게한 일도 있다.
또 외출했다 귀가한 중독자가 흐트려진 침대 「시튼 만 보고『부인이 의간남자와 통정했다』고 질투망상에 빠져 부인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싱가포르·태국등서 원료밀수 밀매조직>
일본의 각성제취체법에는「히로뽕」제조업법은 사형·무기징역등 중벌을 규점하고있으 다음 과정인 운반·판매·복용자에게는 극형규정을 두지않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히로뽕」조직들이 제조를 한국의 범죄조직에 떠넘김으로써 극형을 면해보기위해 한국과 연관을 맺기 시작했다.
륵히 7O년 습관성의약품관리법에「히로뽕」이 규제대상으로 포함되기 전까지는 한국이야말로 제조의최적임지였다.
이 때문에 재일교포 김모씨(68년적발·사망)등이 초산지역의 밀수조직·폭력조직파 손을잡고 한국에서 제조.일본에 밀수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원료인 염산「에페드린」을「싱가포르」·태국·「홍콩」등지에서 밀수임했다.가히 국제분업(?)의 양상을 띠었다.
7O년 단속이 시작된뒤 적발된 대규모「히로뽕」밀조·밀매조직은 49개파에 8백14명.
이 가운데는 일본에서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인「야마구찌」파와「스미요시」파의 폭력배를 비롯,동남아에서 원료를 밀수입해준 중국인선윈들 외국인도 상당수 끼어있다.
또 대한항공(KAL)의 국제선 기장·전직교수·전직경찰관들도 끼어있었다.국내에서적발된「히로뽕」밀매법가운데 대표급은 이황순일.
이는 지난해 3월 부산지검 마약단속반이 그의「아지트」인 숲산시민악동산1 자신의 집을 덮치려하자 엽총을 쏘면서 3시간동안 대치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는 자신의 집 지하실에 비밀공장을 차려놓고 단속반등 외부인의 접근욜 막기위해 대문에 감시용「카메라」·음파탐지기를 설치하고 맹견 3마리를두어 접근자를 경계했었다.
이는 6년동안 감시망을 피해 30여억원 어치의「히로뽕」을 밀제조해오면서 보사부마약단속반 김모계장(40),전 서울시경소속 김모경사(44)등 단속반원들에게도 최고 5천만원의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단속을 피해왔다.
지난해 6월 적발된 부산 한삼수(48)등 일당 5명은 7년동안 모두3백31·5kg(싯가 3백31억5천만원)을밀조,국내에서 최고기록을 세웠다.
78년11월적발된 KAL국제선 기장구창환(49),80년1월적발된「홍콩」선적「만다린」호선원 중국인 안세걸(55)등은「히로뽕」밀매단들이「히로뽕」올해외로 빼돌리는데 한몫 거둘던.「케이스」.
80년9월 전 숲산남부경찰서 순경 최범수(41)는 일본 폭력조직「야마구찌」파와 손잡고 4kg(싯가4억윈)을양시굴속에 숨겨 일본에 밀수출하려다 서울시경에 붙잡혔다.
또 새년5월 역시 일본 폭력조직「스미요시」파의「이찌느리·다까노리」(38)가 관광객을울 가장,부산에 들어와 길태인(52)등과 접선하다 검거됐다.

<대책>
「히로뽕」사범은 극히 음성화돼 있고 그조직이 점조직으로 조직전체가 노출되지 않아다른 범죄에 비해 적발하기가 극히 어렴다.
또 밀수·폭력·상습도박등 다른 범죄와 연결돼있어「히로뽕」밀매범들은 서로보호·감시하고있는것이특징.더구나 이들 범죄조직내에서 배신자가 나왔을경우「린치」를 가하거나 때로는 살해하는등 보복이 두려워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올수없다.
서울지검 마약담당 정홍원검사는『「히로뽕」사범이 더이상 번지기전에 뿌리뽑아야한다』 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 모든 국민이「히로뽕」사범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대로 즉각 신고하는 협조체제가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보자는 신변을 보장하며 1백만원 이내의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