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영상 미를 최대한 추구|타계한 불 감독「르네·끌레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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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파리=주원상 특파원】「프랑스」의 예술평론가「막시밀리앙·고티에」는 지난 15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최고의 영화감독「르네·클레르」를『마르지 앓는 샘』이라고 평했었다.
「올드·팬」들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파리의 지붕 밑』(1930년)등 수많은 감동적인 작품을 남긴「르네·클레르」의 죽음은「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계의 큰 손실로 받아 들어지고 있다.「르네·클레르」(본명·「르네·쇼메트」)는 23년『잠자는「파리」』에서 처음「메가폰」을 잡은 이후 42년 동안 자유를 옹호하고 돈과 권력에 대한 경멸을 주제로 한 28편의 영화를 감독,『가장「프랑스」적이며 개성 있는 영화인』이란 평을 받아 왔다. 65년 이후 영화제작에선 손을 뗐지만 62년 영화인으로선 처음으로 권위 있는「프랑스」한림원(아카데미·프랑세즈) 정회원이 됐다.
이에 앞서「장·콕토」등 몇 명의 영화관계 예술인이「프랑스」한림원에 들어가긴 했으나 이는 그들의 영화에의 공로에서라기보다는 문학가로서의 명성에 의한 것이었다.
「르네·클레르」는 처음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26년엔 소설『아담스』(ADAMS)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발표한 영화『잠자는「파리」』에서 느낀 영상에 대한 매력 때문에 끝내 문학에서 손을 떼고 영화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의「영상우위」라는 신념은 그이게 있어선 하나의 종교 같은 것이어서 그는 항상 『영상예술이 없는 영화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해 왔었다.
연극에선 대사가「오페라」에선 음악이 주인이며 생명이듯이 임화에선 영상이 생명이란 주장이다.
그런만큼 유성영화의 출현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유성영화의 출현에 실망을 느낀 그는 한때 영화에서 손을 떼느냐 앓느냐로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르네·클레르」는 결국 영화에 재도전,「토키」영화출현 이후에도 영화에서의 영상예술 우위 론은 여전한 신념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영상예술에 대한 뛰어난 논문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죽음이 발표된 직후 많은「프랑스」영화인들은 애도의 뜻을 나타냈는데『「프랑스」 최대최고의 영화인의 죽음은「프랑스」영화사의 한 장을 닫게됐다』(미셀·모르강)『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가장 우아하고 재능 있는 영화인』(브리지트·바르도)이란 표현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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