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과 공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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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소설가 김유정은 그의 작품 『산골』에서 사흘만에 한번 오는 우체부를, 매일 해가 넘어가고 날이 어둡도록 지리 하게도 기다리는 어느 산골 큰아기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집배원을 기다리면서 뭔가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인간 심리인 것 같다.
지난 9일 중앙일보에 실린 『잘못 배달되는 우편물이 많다』는 기사를 읽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 인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그 우편물들이 정성껏 배달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는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중요한우편물이, 많을 때는 10%가량이나 잘못 배달되고있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차라리 과장이기를 바라고 싶었다.
우편물이 정확·신속하게 배달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그 국가 사회의 공신력을 재는 척도가 된다고 한다.
받아야 할 사람에게 바르게 전해지지 않는 우편물, 보내는 이의 정성어린 뜻이 내포된 우편물이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편물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선량한 시민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우편물이 잘못 배달되는 중요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론 우편물은 연평균 20%씩 늘어나는데 비해 일손은3%정도밖에 증원되지 않고 있다는데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성과 사명의식의 결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일화지만 미국의 16대 대통령「링컨」은 젊었을 적에 마을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우편국장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링건」은 편지를 모자에 넣고 직접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읽어 주기까지 했다.
「링컨」의 성실성과 책임감은 크게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것이 주의원에 당선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조그만 일에서부터 자기의 성실과 책임을 다해 보이는 것이 민주시민의 떳떳한 자세임을 강조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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