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써니’의 희망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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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호 04면

이선희는 늙지도 않더이다. 폭발적이면서 애절한 목소리는 30년 전과 똑같네요. 동그란 안경 속에 눈망울이 반짝반짝하는, 단발머리 소녀의 수줍음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요. 여기에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같이 주위를 보듬고 품게 된 원숙미까지 배어나와 보기에 좋았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밤 방송된 JTBC ‘히든싱어3-이선희 스페셜’편은 J학원에서 ‘J에게’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던 저의 30년 전 여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함께 나온 후배 가수들과 노래와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도 훈훈했고요(임창정의 ‘소주 한 잔’을 부르는 이선희의 모습은 이미 유튜브에서 기록적인 조회 수를 올리고 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힐링이 될만한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대한 이선희의 선곡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구전가처럼 불리던 ‘희망가’를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 세상 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이로다.”

‘이 풍진’이라는 가사 첫 소절부터 왜 그리 콧날이 시큰해지던지요. 세상이 왜 이렇게 점점 어수선해지고 험악해져만 가는 지 말입니다. ‘부귀와 영화’만 좇았던 결과가 이런 것인가요.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은 다시 희망을 품고, 또 사랑도 하며 살아가야 하겠죠. 아무리 ‘풍진’ 세상일지라도 말입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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