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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의 건강 관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계룡산 동학사 본당 앞에 해우교라는 자그마한 다리가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좁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2m쯤의 돌다리다.
이 다리 건너편 코앞에 5∼6평쯤의 집이 하나 있는데 팻말이 2개 걸려 있다.
왼쪽 팻말은 『해우실』, 오른쪽은 『공중 변소』. 여승들은 해우교를 건너 근심을 풀고, 중생들은 돌다리를 건너 생리적 근심을 푼다는 뜻일까? 본보 4면에 경제인의 24시가 연재되고 있다. 신상명세서와 함께 건강을 중심으로 한 하루 일과를 소개하고 있다.
경제인, 그들에게 있어 건강 관리는 어떤 사업에도 떨어지지 않은 중요한 과업이다. 바쁜 중에서도 건강 관리를 위한 절제와 노력은 놀랄 만하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몇가지 최대공약수를 발견할 수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사업과 사생활간의 생각 전환이 빠르다는 것,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재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사적 편모를 소개하는 것은 흔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취재 기자로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자주 접하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인간적인 한 귀퉁이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원순씨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찾아온 취지를 설명하자 『이 사람아, 내 나이 아직 91세밖에 안됐는데 무슨 건강 걱정인가』하는 첫마디에 기가 질렸다. 이 회장은 다른 사람 것을 보고 마무리로 친필 원고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정주영씨는 원고지에다 사생활에 관한 것을 「사인·펜」으로 직접 써왔다. P회장은 「인터뷰」까지, 해놓고 중소기업 사장 것이 먼저 나갔다고 안 하겠단다. 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런 순서 없이 연재하고 있은 우리로선 P회장에게 재력에 상응한 예우를 못해주어 매우 미안하게 여기고 있는데 P회장 원고는 아직도 「데스크」의 책상에서 잠자고 있다. 이번 취재에서 느끼는 것은 경제인들이 격을 많이 따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도는 경제인들의 공적 면모 뒤에 있는 인간적인 모습을 소개해 보자는 것인데 좀체로 엄숙한 자세를 풀지 않으려 한다. 사진만 해도 냉수 마찰이나 조깅하는, 좀 부드러운 것을 쓰고 싶은데 한결같이 주는 것은 매우 근엄한 표정의 증명사진이다.
처음 데스크로부터 이 취재 지시를 받고 내심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이즈음의 신문에 대한 평가같이 씁쓸하다.

<박병석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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