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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실적 압박 줄여달라" 총장 "지금은 뛰어야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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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경희 이화여대 신임 총장(왼쪽)이 20일 오후 교내 ECC극장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교수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400명이 넘는 교수가 참석했다. [김성룡 기자]

20일 오후 1시30분. 서울 이화여대 내 ECC 극장으로 이대 교수 4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전체 교수 997명 중 절반가량이 참석한 것이다. 좌석 300개가 금세 차는 바람에 늦게 온 교수들은 빈 공간마다 의자를 놓고 앉아야 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지난 1일 취임한 최경희(52) 신임 총장과의 토크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은 원래 ‘2014학년도 전체교수회의’가 예정된 날이었다. 매년 진행돼 온 학사일정 중 하나로 그동안은 총장 인사말을 듣고 점심을 함께 먹은 뒤 오후엔 단과대학별 회의를 했다. 하지만 교수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최 총장의 제안에 따라 토크 콘서트로 변경됐다. 연단에 오른 최 총장은 “쓴소리와 돌직구를 듣고자 왔는데 한 단 높은 무대 위에 있어야 하는 게 불편하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두렵지만 기대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말했다.

 조상미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화답하듯 손을 들었다. 조 교수는 “사회적 기업 관련 프로그램을 학교로 들여올 때 기획처·대외협력처 등 온갖 부서를 돌고 돌아 겨우 총장 사인을 받았다. 외국 대학이 팀 티칭을 제안했을 때는 ‘학기가 다르다’고 불허했다.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규제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최 총장은 “학기가 달라서 못한다는 건 핑계다. 부서 간 칸막이도 없애도록 노력하겠다”며 “정 안 되면 내게 직접 메일을 달라. 난 e메일 중독자라 항상 확인한다”고 말했다.

 현장질의뿐 아니라 문자메시지 질의도 함께 이뤄졌다. 교수들이 지정된 전화번호로 질문 내용을 보내면 화면에 내용이 뜨고 총장이 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문자 질의는 “육아휴직 배려해 달라. 이화여대부터 일하는 여성들을 배려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였다. 최 총장은 “우리 학교 여교수님 중 방학에 맞춰 출산하지 않는 분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며 “기업 후원을 받아 육아보육시설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남성 교수는 “교무처가 지난 학기부터 도입한 교원평가 지표는 단과대별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단과대별 논의를 반영해 달라”고 제안했다.

 최 총장이 모든 질문에 좋은 답을 한 건 아니다. 수업시간을 늘린 만큼 연구실적 압박은 낮춰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최 총장은 “지금은 뛰어야 할 때”라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대학원 활성화를 위해 특수대학원 등에 남학생 입학을 허용하자는 문자 질의에도 “전혀 계획이 없다. 여성을 최대한 키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학교 영문 이름에서 ‘woman’을 빼자는 요청에 대해선 “논문 등에서 ‘woman’을 빼는 분들이 있는데 반드시 넣어 달라”고 도리어 교수들에게 부탁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한 조형예술대학 교수는 “이전에 없던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말했다. 안지영 경영학과 교수는 “젊은 총장님답게 구성원의 얘기를 직접 듣고 솔직하게 답하려는 모습이 좋았다”고 말했다. 2시간 동안 지정 번호로 온 문자 수는 80개를 넘었다. 최 총장은 이날 현장에서 답하지 못한 나머지 문자 질문에 전부 답을 달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릴 예정이다.

 1994년 이대 과학교육과 교수에 임용된 최 총장은 이대 역대 한국인 총장 중 첫 이공계 출신이다. 80년 이래 최연소 총장이기도 하다. 최 총장은 이날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뛰어 이화여대의 명성을 드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이서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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