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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8분기 연속 마이너스 … 핀란드 흔든 '노키아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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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핀란드에서는 발트해를 ‘이타메리(동해)’라고 부른다. 하지만 발트해는 핀란드 서쪽에 있다. 700년간 발트해 건너 스웨덴 왕국의 지배를 받았던 흔적이다. 스웨덴이 물러간 1809년부터 100여년 간은 동쪽으로 국경을 맞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이 같은 아픔을 딛고 부와 자유를 거머쥔 북유럽의 강소국 핀란드가 다시 한 번 흔들리고 있다. 노키아의 몰락이라는 내우(內憂)에 러시아 경제침체라는 외환(外患)이 겹치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8분기째 뒷걸음질쳤다. 실업률은 10%를 넘나든다. 중국과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한국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비지니스위크는 최근 헬싱키 르포를 통해 “노키아의 몰락 이후 핀란드 국가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키아는 2008년 전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차지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이 몰고 온 ‘스마트폰 쇼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급속해 무너졌다. 지난해에는 휴대전화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했다.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2009년 GDP가 8.3% 감소한 뒤 아직도 2008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올 하반기에도 경기침체가 이어져 연 3년째 역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2015년까지 경기 하락이 계속돼 2008년 수준을 회복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놨다.

 경기 침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노키아에서 15년간 일하며 100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관리하던 조우니 린드만은 지난해 일자리를 잃은 뒤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진 탐페레에서 버스를 운전한다. 핀란드의 실업률은 올 5월 10.7%까지 올랐다. MS는 지난달에 1만8000명 감원계획을 내놨다. 핀란드에서도 1100명이 추가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지난해 핀란드 정부가 지급한 실업급여는 41억5000만유로(5조6000억원)로 90년대 이후 최대다. 평균 실업수당 역시 2008년 하루 55유로에서 지난해에는 67유로로 늘었다. 그만큼 높은 연봉을 받던 고급 인력이 일자리를 많이 잃었다는 의미다. 핀란드 정부는 노키아에서 해고된 고급 두뇌들의 벤처 창업을 유도하고 올 들어 법인세율을 24.5%에서 20%로 낮췄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는 미미하다. 한때 GDP의 10%에 달했던 정보기술(IT) 분야의 비중은 최근 4%로 떨어졌다. 단스크 은행의 경제분석가 유하나 브로더러스는 “숨겨진 실업과 불완전 고용, 조기은퇴 등을 감안하면 실제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노키아 쇼크의 여파는 한국까지 미치고 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자리잡은 노키아 한국공장 법인 노키아티엠씨는 올 4월 말 철수 결정을 내리고 조업을 전면 중단했다. 2012년 구조조정을 거치며 900명에서 200명으로 줄어들었던 이 공장 직원들은 이번에 모두 직장을 잃게 됐다. 한때 3만6000명에 달했던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전체 고용인원은 노키아티엠씨 철수로 최근 6000명 이하로 줄었다.

핀란드 경제의 침체는 노키아 탓만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발판이 됐던 러시아 경제의 위축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핀란드는 냉전시절 러시아의 대 유럽 교역창구 역할을 했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오일쇼크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오히려 90년대 초반에 구 소련이 무너지면서 한때 배급제를 실시했을 정도로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2000년대 이후 러시아에 기대 성장해 온 핀란드에게 러시아 경기 침체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제재는 적지 않은 악재가 될 전망이다. 러시아 관광객들은 더 이상 핀란드를 찾지 않고, 대 러시아 수출도 10% 줄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 GDP가 3% 감소할 때마다 핀란드는 0.5%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핀란드는 국토 넓이가 한국의 3.4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10분의 1이다. ‘핀란드인은 자본주의자처럼 말하지만 사회주의자처럼 행동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실업급여를 포함한 사회보장 제도도 잘 갖춰져 있다. 수평 비교하기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하지만 특별한 천연자원 없이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와 대외 교역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역시 삼성전자를 비롯한 IT 분야 수출과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핀란드의 전철을 밟지 않을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특정 국가,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구조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 내수 산업, 서비스 산업 등 다양한 부문에서 성장 동력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창우·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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