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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맹」과 한국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비동맹회의는 지난 20년동안 거의 예외없이 미국을 「신직민지주의」의 종주국으로 공격하고 소련을 제3세계의「당연한 동맹」으로 찬양해 왔다. 7O년대에 들어서서「쿠바」가 선도하는 친소·과격노선이 비동맹운동의 주도권을 한층 강화했다.
이번「뉴델리」회의는 급진파견제의 마지막 보루였던「티토」없이 열리는첫회의였기 때문에 친소파의 독주는 더욱 걱정되었다.
그러나 주최국인 인도의 중도적입장, 소련의「아프가니스탄」침공의 부담으로「쿠바」의 미국 규탄, 북괴의 주한미군철수 요구같은 친소·급진노선이 최종선언문에 접근하지 못한채 회의는 막을 내렸다.
소위 『「뉴델리」선언』이 소련과 「베트남」의 이름은 직접 들지 않은채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소련군의 철수, 「캄보디아」로부터의 「베트남」군의 철수를 요구한 것은 「쿠바」를 위시한 친소파의 큰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북괴는 정상회담으로 재확인된 한미우호관계,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을 의식하면서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조항을 선언문에 넣으려고 했으나 제1차 초안과 제2차 초안에서 모두 봉쇄당하는 고배를 들었다.
인도는「디에고가르시아」의 미군사시설의 철수를 요구할 것을 주장했지만 인도양으로부터의 강대국 군사력의 철수라는 일반적인 요구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토」몰후 처음으로 열린 「뉴델리」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의 「공수」의 입장이 뒤바뀌고 과격파의 주장이 중도파의 저항을 뚫지 못한 것은 비동맹운동이 큰 전환기를 맞았음을 의미한다. 이제 비동맹회의내부에 세력균형이 잡힐 조짐이 보인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것처럼 북괴는 중공및 소련과 동맹을 맺고 있다. 따라서 「비동맹」운동의 본래의 취지에 충실하자면 남북한 모두가 회원대격이 없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동맹회의를 지배하는 친소·반미의 현실이 원칙을 누르고 74년「리마」회의에서 북괴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뉴델리」회의가 비동맹운동의 변질을 상징한다고 해도 그것을 곧 한국의 가입을 가능케 하는 조짐으로 속단할 수는 없다.
비동맹을 향해서 한국은 계속 의연한 자세를 취하는게 현명할것 같다.
한국외교의 병폐의 하나는「외교」앞에 「유엔」·비동맹·공산권·제3세계·자원·「스포츠」·문화등의 잡다한 수식어 붙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뉴델리」의 비동맹회의가 급진파의 열세, 중소세력의 우세를 드러내자 대뜸 비동맹외교의 적극화소리가 들리는 것은 외교를 맡은 사람들의 단견을 보는 것같아 걱정스럽다.
나라가 분단되어 남북이 대치하고있다는 현실은 한국의 모든 대외접촉에 예외없이 투영되고 있다. 「유엔」외교 따로 있고, 비동맹외교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국력과 능력이 자라는데까지, 그리고 바깥사정이 허락하는 한 밖으로 많은「친구」를 구할수 밖에 없는 일이다.
「유엔」의 결의나 표결 하나에 국운이 좌우되기나 하는 것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미친적인 외교」에 정력을 낭비하던 과거의 교훈은 비동맹 운동에도 해당된다.
북괴가 가입한 74년이후 비동맹회의가 북괴가 요구하는대로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을 결의나 선언에 삽입했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북괴의 기도가 좌절된 것이 바로 한국외교의 승리라고 기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우리가 할일은 비동맹운동이 제3세계의 정치적인 독립, 경제적인 자립, 외교적인 중립이라는 본래의 이상을 가급적 조속히 실현하기를 바라면서 국내의 안정을 바탕으로 「비전」있고 거친적인 외교에 충실하는것이다. 그렇게 하면 「유엔」에서, 비동맹권에서, 동구에서, 그리고 산유지대에서 거기 상응하는 보상은 있기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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