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Report] 유니클로가 석유화학 구원투수라는데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이 웃으면 석유화학 업계도 웃는다.’

 ‘빅데이터 기술이 석유탐사 시장을 가른다.’

 일견 고개가 갸웃해진다. 하지만 농이 아니다. 적자행진을 이어가는 석유화학과 에너지 업계의 업황이 궁금하다면, 유니클로의 석유화학 구원투수론(論)을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셰일가스 시장에 뛰어든 SK이노베이션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빅데이터 기술을 좇아볼 만하다.

 이종(異種)산업인 유니클로의 석유화학 구원투수 등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등판의 배경은 의류업의 제조 사이클에서 시작한다. 옷은 천연섬유로도 만들지만, 화학섬유가 옷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폴리에스터 섬유가 대표적이다. 이 폴리에스터 섬유의 ‘원료’는 고순도 테레프탈산(PTA)이다. 이 원료는 원유를 정제해서 나오는 파라자일렌(PX)에서 나온다. 이 원료는 우리가 마시는 음료수를 담는 ‘페트병’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파라자일렌→PTA→폴리에스터 섬유로 이어지는 소비의 연결고리 때문에 궁극적으로 의류 소비에 따라 업황이 달라진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텍사스 크레인 카운티 등 미국 광구 2곳을 인수하고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셰일가스 개발에 뛰어들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석유화학 업계는 최근 몇년 사이 증설경쟁을 벌였다. 앞다퉈 ‘파라자일렌’이 새로운 현금창출원(cash cow)이 된다며 공장 증설에 나섰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중국이었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로 증설경쟁은 독으로 돌아왔다. 파라자일렌의 가격이 폭락했고, 공장을 돌려도 손해보는 상황이 됐다. 공장을 다 짓고도 정식 가동을 미루는 곳도 생겨났다. 일본업체와 수조원대의 합작투자를 약속했던 GS칼텍스의 허동수 회장은 “투자를 올해 안에 결론내기 어렵다”고 한발 물러섰다. 선제투자를 한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수조원을 들여 공장을 세웠지만 울산공장은 시운전을 하는 중이고, 인천 공장만 정상 가동에 들어갔다. 삼성토탈 역시 1조6000억원 짜리 공장을 세웠지만 시험 가동만 하고 있다. 섣불리 생산에 들어갔다가 적자를 면치 못할 우려가 높아서다.

 유덕상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석유화학의 업황회복 여부를 소비 연결고리 끝단에서 찾았다. 그는 유니클로, 자라와 같은 패스트패션이 인기를 얻으면 파라자일렌 시장이 좋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말 기준 파라자일렌은 전세계에서 4100만t이 생산됐다. 이를 소진하려면 PTA 5857만t→폴리에스터 섬유 5189만t이 필요하다. 전세계 인구가 1인당 1년에 구입하는 의류는 12㎏. 옷 한 벌 당 무게를 800g으로 산정해 파라자일렌 공장을 가동한 회사들이 적자를 면할 수 있는 ‘의류소비량’을 계산했다. 그의 계산식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생산된 파라자일렌을 소진하기 위해선 전세계 모든 소비자들이 2.5벌씩 화학섬유로 만들어진 옷을 ‘더 사야’한다.

업체들 파라자일렌 공장 짓고 가동 못 해

 업황 회복에 도움이 되는 옷은 따로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같은 명품 옷은 마이너스 효과를 낸다. 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정장 한 벌에 200~250g짜리 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경량화를 추구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파라자일렌 업체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가격이 비쌀 뿐, 들어가는 화학섬유량이 절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반면 유니클로와 스페인의 자라 같은 패스트 패션은 우군이다. 그는 “패스트 패션의 확대로 2010년 후 전세계 의류 소비가 빠르게 증가했다”며 “다만 연평균 화학섬유 소비 증가율이 4.3%대인 것을 고려하면 (시장회복)은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석유업계 두번째 구원투수는 빅데이터 기술이다. 전통의 유전 개발 방식은 지층에 ‘고여있는’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면 됐다. 하지만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은 지층에 ‘섞여있어’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파로 수압파쇄 기술과 ‘니은(ㄴ)’자 형태의 수평 시추 기술이었다.

 땅속에 산재한 이 자원을 뽑아쓰기 위해선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정보의 필요성을 깨달은 곳은 쉐브론이었다. 미국 석유회사인 쉐브론은 1990년 초만해도 수천개의 광구에 직접 사람들을 보내 광구를 관리했다. 2000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고 텍사스에 데이터 분석센터를 차렸다. ‘디지털 오일 필드(digital oil field)’로 불리는 이 분석센터는 전세계에 있는 광구의 ‘머리’ 역할을 했다. 3차원(3D) 기술로 지질을 탐사한 뒤, 드릴에 달린 센서로 각종 정보를 취합한다. 이렇게 모아진 정보는 빅데이터 분석기법으로 탐사단계부터 생산과 운영, 사고의 사전감지에 쓰였다. 미국에서 9600㎞나 떨어진 아프리카 광구의 이상징후를 제일 먼저 알아낸 것도 이 분석센터였다. 쉐브론은 하루 1.5테라바이트(TB)에 이르는 정보를 분석하며 셰일 시장에서 발을 넓혀가고 있다.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인 스타토일도 2006년부터 빅데이터 기술을 탐사사업에 접목시켰다. 이 회사는 ABB와 IBM 등과 손잡고 연구개발(R&D) 컨소시엄을 짰다. 탐사설비의 노화, 운영비용의 급증을 막기 위해선 빅데이터 기술이 필수적이란 생각에서였다. 스타토일은 빅데이터 기술을 사용해 실제 광구의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BGP사는 석유 탐사관련 빅데이터 수집과 처리 능력을 사업화했다. 세계 2위의 석유탐사회사로 자리잡은 이 회사는 BP와 엑슨모빌을 비롯해 전세계 150여 곳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너지 연구기관인 IHS CERA에 따르면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회사들의 생산성은 8%나 늘어났다. 운영비용은 무려 25%나 감소했다.

빅데이터 관리, 사고 막고 비용 25% 감소

 해외 업체들이 빅데이터 기술을 석유탐사 사업에 접목해 셰일가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데 반해 아직 우리 기업들의 수준은 일천하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이 민간기업으론 처음으로 미국 현지에서 셰일가스 채굴에 나섰을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의 성장성에 비해 기술장벽과 광구 인수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등의 문제로 우리 기업들의 진출은 더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셰일오일 보고서에 따르면 셰일가스와 오일 시장은 미국이 주도를 하고 있다. 하루 평균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은 2006년 31만 배럴에서 2013년 348만 배럴로 11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세계 셰일오일 생산량의 95%에 달하는 양이다. 셰일산업의 파급력은 상당하다. 한국은행은 셰일오일의 생산증대로 고용과 소득이 미국에서 1.6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셰일오일의 주 생산지인 미국의 노스다코다주 바켄지역의 고용과 임금은 각각 연평균 6.3%, 8.9%가 늘어났다.

 SK이노베이션 김태원 E&P기획실장은 “최근 미국 석유광구 자산의 인수를 통해 3차원 지질탐사 지도와 진보된 정보처리능력 등 정보통신 기술(ICT)이 적용된 수평시추, 수압파쇄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며 “향후 지속적으로 미국지역에서 기술 확보 및 인력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