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그 여유와 풍정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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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었지, 아름다운 2월은 날짜도 적으니 고통도 적으리라고. 살아가는 길목 고비 고비에서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릴 때 1년 중 가장 적은 날을 안고있는 이 달은 무언가 위안이 되는 게 있다.
그 뿐만은 아니다. 입춘(4일)에 잇닿은 구정(5일), 그리고 멀 잖은 우수절 (19일)이 낀 2월 달력을 바라보노라면 움츠렸던 마음속에 따스한 양광이 스며드는 걸 느낀다.
바람은 아직 맴고 겨울은 우뚝 버티고 서있다. 허나 어느새 잿빛 겨울하늘 저 끄트머리에 어려있는 봄의 서기를 보는 것이다.
그 중에도 정다운 음력설을 맞는다.
올해도 이날을 공휴일로 하느냐 마느냐 부심하던 정부는 슬그머니 주저앉아 매듭을 풀어주지 못했다. 양력설과 음력설이 여전히 와우각상의 논란대상이 되고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음력설을 고향에서 지내려고 수십만 인구가 귀성인파를 이루는 것을 그냥 감상적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오늘의 우리사회 여건이 허락 치 않는 구석이 있다.
밤을 낮 삼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룩해가야 할 근대사회의 영위와 생산수출이라는 국가적 과업이 지나친 구정 분위기에 밀려 차질을 빚을 우려가 없을 수 없으며, 신정과 구정의 이중과세 문제도 고려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집안에서도 직장생활에 매여있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정연휴에 다례를 올리고 있다. 우리주변에서 상당수가 이렇게 지내고 있는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력설 날이야말로 진짜 설날 기분이드는 이 뿌리깊은 사고방식의 근원은 무얼까.
지난날 일제하에서 신정을 일본설이라 반발하고 은밀히 고집스럽게 고유의 음력설을 지켜왔던 우리 선조 들의 그 애국심의 여진일까. 이제 금 민족전통의 재발견이라는 차원 높은 문화적 지향일까.
어느 쪽이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건 구정을 전후해서 한번씩 술렁이는 수십만 귀성인파와 공공연해져버린 비공식공휴일 분위기가 아닌가한다.
음력설날이 어떤 명목의 공휴일이 되든 안되든, 이렇게 존중되는 그 가장 깊은 바닥에는 「우리 것, 우리 선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 설날」 에 대한 향수 어린 민속과 풍습이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신정연휴가 아무리 여러 날이 되어도 우리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설날이 역시 구정 쪽이란 다면 이에는 적절한 대응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을 듯 하다.
지금의 40대, 그러니까 내 나이만 하더라도 어릴 때의 설날은 화기롭고 신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머리맡에 개켜놓으신 설빔을 펼쳐 입고 집안어른들께 세배를 들이고 친척이나 이웃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새해인사를 올리던 순연한 즐거움이 있었다.
동네 골목골목에서 널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겁이 많은 나는 양쪽에서 언니들이 손을 잡아줘야 널을 뛰곤 했던 것이다.
동네 어귀를 조금만 벗어난 비탈진 빈터에서는 사내애들만이 아니라 한복차림의 어른들까지 토실한 털 귀마개를 하고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여유롭고 정겨운 풍경이었다. 아삭하게 튀겨낸 찹쌀강정(강정)을 들며 정갈한 설음식에서 훈훈한 한국인의 정취를 훔뻑 누리던 그런 설날이었다. 정작 어릴 때는 잘 몰랐던 그때 그 분위기가 세월이 흐를수록 진정 우리네 생활의 아름다움이요 기쁨이었음을 생각하게되고 다시없이 소중해진다고 바쁘고 고달픈 현대생활일수록 우리에겐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무형의 정을 주고받을 정신적 귀향의 시간이 아쉽다. 나의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의 자리를 딛고 자라가게 하고싶다. <필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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