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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8)제 72화 비현실의 떠돌이 인생<제자=필자>김소운(2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뒷날, 일문으로 쓴 어느 글속에 이런 한 귀절이 있다.
『희망이라고는 실오라기 만큼도 없는 암담한 나날-, 「양권분립」이란 근사한 문자 하나를 발명해 놓고, 육체는 육체로, 정신은 정신으로 다스린다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건 닥치는 대로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동포 노무자들이 모여사는「혼죠」「후까가와」의 간이 숙박소며 공사장 근처의 「한바」- 인부들이 합숙하는 이동판자집을 찾아다니면서 향토의 구전민요를 채집하는 것이 유일한 보람이었다. 그러나 겨우 스무나문살 남짓한 젊은 풋나기 주제에 억센 장골들을 상대로 민요를 채집한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노릇은 아니었다.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내가 모국의 구전민요에 짐념을 쏟은 것은 거기 얼룩지지 않은 향토의 시인이 있고, 민족이 이어받은 소박한 정서의 발자취가 담겨 있기 때문이지만, 그런 이유보다도 더 절실한 이유는 억누를래야 누를 수 없는 향수-, 조국을 향한 망향의 갈증을 잠시나마 달래자는 아쉬움에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 나를 한다한 인물로 대접해 준 것은「특고」 (사상담당의 고등계)의 형사뿐이었다.
바지런하고 직무에 충실한 「특고」씨들은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 왔고 때로는 예비검속에 한몫 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웬 낯선 분에게서 두툼한 편지 한장이 배달되어 왔다.』
인용이 길어졌지만 「조선구전 민요집」의 출판을 도와 준「쓰찌다·교오숀」씨를 두고 쓴 회상기의 한구절이다.
아무리 육체는 육체로 다스린다지만 거기도 한계란 것이 있다. 자본이 없으니 장사는 못할 것이요, 체력이 어설프고 보니 육체노동도 가망 없다. 궁여지책으로 내가 생각해 번 것은 상점의 유리창이나 여관집 외등 같은데 글자를 써주는 떠돌이 글씨장이다. 글씨에 자신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글씨는 둘째요, 문제는 「배짱」 이다.
「알프스」를 넘는「나플레옹」의 용기로 나는「에나멜」깡통 2, 3색에다 휘발유며 붓들을 사서 유리에다 글씨를 쓰고 지우고 하면서 하룻밤동안 연습을 했다. 진짜 글씨장이에 비할 나위는 없으나 그럭저럭 흉내를 낼 자신이 생겼다.
솜씨가 반푼어치니 반만 받기로 하고 나는 중학생 가방에다「에나멜」통을 넣어 들고는 이튿날부터 거리에 나섰다.
작가 「아꾸따가와」가 자살하고, 바둑 천재라는 오청원 소년이 중국에서 오고, 그해 겨울 연호가 대정에서 소화로 바꿔졌다.
이듬해 여름, 야간에 다니던 정칙영어학교에서 「오가와· 시즈꼬」(소청정자)를 알았다. 나는 초급반, 정자는 「디킨즈」를 원문으로 읽는 고등반 학생이었다.
「니이가마」현하의 작은마을에서 출생한 정자는 아우 둘을 대학에 보내느라고 동경에 나왔더란 이야기다.
아우들은 이미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도 웬 까닭인지 정자만은 동경에 남아 있었다.
내가 「시나까와」구에 방하나를 빌어있는 집이 「다까나와」경찰서 관내다.
어느날 고등계 형사가 와서 나를 데려갔다. 무슨 예비검속이라고 한다.
장사아치도, 농사꾼도 아니면 그들의 눈에는 모두「부정선인」이다. 하물며 직업은「떠돌이」에 「엉터리」가 붙은 글씨장이-. 『노무자들을 찾아 다니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들의 의혹은 이것이다. 책권이나 읽는 조선인은 모조리 사회주의자로 규정짓던 시대이니 의혹의 이유로는 충분하다.
그들은 내 숙소를 뒤져서 「조선농민가요」가 실려있는 『지상낙원』 몇권과 정자가 귀성했을 때 보내 온 그림옆서 한장을 찾아냈다. 『이게 누구냐?』 『어떤 관계냐?』 -캐고 파던 나머지 마침내 그 정자까지 경찰에 연행해 왔다.
취조실 형사들이 둘러 앉은 그 자리에서 정자와 대면을 한 것은 검속된 2, 3일 후다. 거기 상급생인 정자가 와있는 것을 보자 나는 부릅뜬 눈으로 형사를 노려보면서 『왜 상관없는 사람까지 불렀느냐! 학우끼리 옆서 한장 주고 받은 것이 무슨 죄란 말이냐!』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내 않은 뒷자리에서 『김군! 흥분 말어, 여긴 세계가 다르쟎아!』하고 내 등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돌아다 보니 거기『지상낙원』의 동인들- 나보다 선배격인 「나까무라· 교오지로」(후일 조선민요집에 발문을 쓴사람)며 「구니이·쥰이찌」(전후 참의원의원)- 그밖에 낮 익은 얼굴 네다섯이 「다다미」 깔린 형사실에 나란히 앉아있다. 유치장에서 끌려나온 내 눈에는 그들이 모두 형사로만 보였던 것이다.
내 기고만장한 기세에다 중촌·국정들의 증언도 있어서 그날로 나는 고륜경찰서에서풀려 나왔다.
고륜경찰서 바로 건너편에「레스토랑」이 있다. 『지상낙원』 의 동인들과 정자가 거기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30전하는「카레라이스」에는 날계란이 하나씩 얹혀있다. 그리고 「코피」 한잔씩-, 이것이 나를 위로해준 그날의「메뉴」 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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