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투기 현상- 최창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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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때는 복부인들의 「아파트」 투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더니 얼마전에는 실업인과 연예인이 주측이된 도박판이 또한번 사회의 여론을 고조시켰다. 도박·투기란 어떤 형태이든 반사회적 반도덕적인 독소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소위 「있는 층」에서는 전문적인 상습도박 행위가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있다. 「아파트」 투기나 도박도 일종의 노동이라는 궤변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도둑행위도 노동이라고 강변한다면 일소할 수 밖에.
도박판을 투전판 또는 투기판이라고도 한다. 「아파트」투기라는 말도 여기에서 연유된 복합어로서, 자신의 착질하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요행이나 기회를 타서 돈을 벌어 보겠다는 투기심리가 그 기본을 이루고 있다. 이는 착실하고 근면한 자가 정당한 노력의 댓가를 통해 인정받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다수의 의지에 역행하는 독버섯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드 불구하고 요즘 또하나 새로운 형태의 공공 교육투기현상이 등강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는지? 그것도 몇몇 소수 성인들에 의한 자의적인 투기가 아니라 다수의 미성년 학생들이 집단으로 공공연하게 투기행위를 강요받았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한 것이다. 더구나 품격이 지켜져야 되고 실력위주가 되어야 할 대학입시과정에까지도 눈치와 요령주의를 만연시켜 놓았으니 말이다.
노름판의 투전판을 투점판으로 금전과 예비고사 점수를 바꿔 놨을뿐 동일한 형태의 투기판이었음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장땡이 광땡에 눌리고, 배짱으로 버텨 투기만 잘하면「갑오」를 잡고도「삥」을 누를 수 있는 풍토가 투전판이라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의 배짱만으로도 입학의 영광(?)을 누리는 요행주의가 받아들여지는 대학입시 풍토를 어떻게 보아야 할는지. 그냥 단순한 시행착오로 돌리고 또하나의 새로운 투기식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최근 소위 일류명문대학의 기준이 새로 형헝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즉 명문측에 끼려면 첫째 입학원서에 의한 경쟁율은 낮아야하고 둘째 면접 결시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정원미달 현상이 높아야 한다는 역삼각의 이변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서 명문·비명문의 기준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원인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대학당국이나 진학담당 고교 교사와 학부모가 당해야할 피해는 차치하고라도 이 틈바구니에서 요령주의를 배우고 투기심을 조장당하는 미래사회의 주인공인 어린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정신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될 수 있겠는가?
이제와서 책임전가나 누구를 탓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산적해 있다. 다만 이제라도 교육정책 입안자는 물론이려니와 또 학교당국, 학부모등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냉철히 반성하고, 투기현상이라는 외형적인 요인분석 보다도 우리 특유의 사회·문화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무형의 원인과 뿌리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중지를 모아야하겠다.
학교는 많아도 참다운 교육이 없고 선생과 학생은 많으나 스승과 제자는 없다는 부재론만을 한탄하기에 앞서 덕목을 중시하는 진정한 교육의 장을 재건해 보자. <서강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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