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만 세 번 응시 한눈 판 일이 없다"|예시 백84점 서울법대 합격 윤용준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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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비록 꼴찌로 출발하지만 졸업만은 수석을 차지하고야 말겠습니다』-.
예시성적 3백점 이상이더라도 합격하기 힘들 것이라던 바늘구멍 서울대 법대에 불과 1백84점으로 거뜬히 통과한 윤용준군(21·서울 가리봉동42의12).
그러나 윤군은 남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요행을 노린 도박사도 아니고 심심풀이로 장난을 즐긴 건달도 아니다.
『제가 엉뚱하다고요? 눈치 안보고 우왕좌왕도 하지 않았습니다. 곰처럼 저의 길을 갔을 뿐입니다.』 남들이 원서를 사들고 면접날 아침까지 눈치작전을 벌일 때 오직 서울대법대 한곳만을 지원한 뚝심 수험생중의 하나였다.
예시1백84점은 윤군이 바라던 점수는 아니었으나 그가 처한 상황에서 결코 낮은 점수는 아니었다. 남들처럼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사회·과학과목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 영어·수학·국어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1백84점은 바로 여기서 얻은 점수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윤군의 꿈은 파사현정의 법관이 되는 것.
지난 78년 검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서울대법대만 세번 응시한 고집장이다.
전남 보성군 폭내면 시천리가 고향인 윤군은 고향에서 논6마지기로 근근히 생활하는 윤승림씨(48)의 6남2녀중 2남.
복내중을 우등 졸업하고 광주고에 진학했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군은 『너는 고려시대의 관찰사 윤관의 29대 손으로 선조에 부끄러움 없는 인물이 돼라』는 생존해 계신 79세의 할아버지 말씀에 어떻게 하든지 학업을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78년3월 상경한 윤군은 공장에 다니는 누나 용애씨(26)와 자취를 하며 구로 공단의 공장과 서울시내의 노동판을 전전하며 틈나는 대로 책과 씨름했다.
검정고시엔 무난히 합격했지만 서울대법대엔 두번이나 불합격했다. 두번 모두 입학원서 제1, 2지망란에 법대만을 기재할 정도로 서울대법대지향 외곬.
지난해엔 서울 노량진동 Y독서실에서 청소부노릇을 하며 서울대법대를 향한 공부를 계속 했다.
정상적인 학업을 받지 못했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탓으로 예시성적을 1백84점밖엔 못받았지만 점수가 낮다고 남들처럼 눈치나 보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대학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 윤군의 솔직한 고백이다.
중학 3학년 때 조사한 윤군의 지능지수는 1백36. 누가 봐도 수재다.
환경이 주어지면 남 못지 않게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머리다.
『최종합격을 결정해준 학교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학생보다 10배 노력, 중도에 탈락하지 않고 1등 졸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윤군의 각오에 학교측에서도 따뜻한 배려를 약속.
김치선 법대학장은 『누가 뭐래도 윤군은 엄연히 우리의 제자』라며 『특별지도 등으로 다른 학생에게 뒤떨어지지 않도록 뒷받침해 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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