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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모바일·컴퓨터로 보는 몫이 빠진 TV 시청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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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정용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통계분석센터장

물가지수가 종종 소비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체감물가와 달라 혼란을 주는 것처럼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는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TV시청률이다. 현재의 시청률 자료는 가구의 고정형 TV수상기를 이용한 시청률만을 측정한다. 하지만 이는 제한적 정보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생방송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혼자 사는 젊은 층은 아예 TV수상기가 없고 PC나 노트북에 방송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긴다. 이제 시청률 측정도 TV수상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특정 시간 동안 TV를 시청하는 가구나 사람을 백분율로 표시하는 시청률은 미디어 산업을 지배하는 핵심 지표다. 방송사는 시청률로 방송프로그램과 출연진을 평가한다. 광고주는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라면 더 많은 광고료를 지불하고 광고를 실으려 경쟁한다. 광고를 위해서만 시청률이 필요한 건 아니다.

 방송법에서는 여론 다양성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시청률로부터 산출한 ‘시청점유율’을 활용한다. 시청점유율을 초과하면 방송사업 소유제한과 방송광고시간 제한 조치가 취해진다. 시청률이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의 인기를 알기위한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공적인 성격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의 시청률 측정이 TV수상기만으로 부족하다면 당장에라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포함해서 측정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정확하게 시청률을 측정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어떤 미디어를 추가할지, VOD처럼 비실시간으로 보는 프로그램을 어떤 기술로 측정하고 어떻게 합산할지, PC와 같이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기기의 경우 개인의 소비를 어떻게 측정할지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물론 방송사와 통신사, 기기 제조회사와 협회, 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이런 점에서 지난 달 말 방통위에서 열린 N스크린시청점유율조사 민관협의회는 그 의의가 크다.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도 새로운 시청행태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대해 수년전부터 고민하고 있다. 프랑스는 방송사와 광고주가 출자해 비영리조직(Mediametrie)을 만들어 시청률 측정은 물론 검증을 한다. 영국도 비영리기구(BARB)에서 시청률 자료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기구(Media Rating Council)가 시청률 조사의 품질을 인증한다.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텔레비전 시청을 여가 활동이 아닌 ‘여가 불활동’이라 혹평했다. 하지만 지금의 시청자는 다르다. 수동적인 시청에서 검색과 참여를 통해 자신이 주도하는 능동형 스마트 소비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혁의 시대에 미디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청률 측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민관협의회 이름처럼 시장이 선도하고 정부가 지원해서 시청률에 대한 신뢰가 자리 잡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용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통계분석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