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질 52명의 석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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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란」에 억유되었던 미국인질들의 석방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한다. 그들 52명의 인질들은 개인적으로는 전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었고 미국의 대「이란」정책에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있지도 않았다.
그리한 그들이 아무리 혁명의 북새통이라고는 하지만 장장 15개월이나 「이란」에서 최악의 조건아래 심신의 고초를 겪은데 대해 우리는 인간적인 동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연민의 정은 미국의 무력한 처지에도 쏠렸다. 전후사의 무대에서 주역으로 군임하면서 한때 「팔레비」 왕조의 「이란」의 운명을 좌우하던 미국이 「호메이니」에게 덜미가 잡힌 모습을 보고 「프랑스」의 한 언론인은『미국의 군사적우위에의 적종이 「이란」서 올리는 것을 들었다』고 탄식했다.
인질석방의 공노에 따르기 마련인꽃다발이 「카터」의 가슴에 안기느냐「레이건」의 가슴에 안기느냐는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것은「호매이니」의 「이란」이 인길들을 「레이건」의 취임전야에 석방했다는 사실이다.
인질석방의 실패는 「카터」의 패인의 하나이기도 했다. 표현을 달리하면, 「호메이니」는 인질들을 가지고 자기나름대로 「레이건」의 당선을 유도했다.
바로 여기서 미국과 「이란」 관계의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 것이다.
「이란」은 「폐르시아」만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는 나라다. 소련의 「페르시아」난 진출은 「이란」을 거쳐야한다. 「이슬람」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이란」을 미국이 중동의 군사적인 강국으로 육성한 것더 「페르시아」만의 유전지대를 향해 남진하는 소련세를 차단하는데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혁명후의 「이란」은 미국과 일체의 관계를 끊으면서 「카스피아」해쪽으로 뚫린 뒷문을 통해서 소련의 확대된 영향력을 끌어들였다.
그런 사태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과 함께 「페르시아」만안 일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소련의 전략적인 지위는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
「이란」 혁명과 그로 인한 미국세의 후퇴는 그동안 현서방적인 노선을 걷던 「아랍」 산유국들의 정정불안의 원인이 되고었다.
따라서 「레이건」 행정부가 인질석방을 계기로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얼마나 신속하게 그리고 폭넓게 추진해 나갈 것인가에 산유국들의 정치적인 안정과 한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원유공급의 장래가 달려 있다.
인질석방의 조건에 따라서 미국에서 「이란」쪽으로가는 「몸값」은 무기대전으로 미국으로 환유되고, 그럼으로써 「이란」이 대「이라크」전에 필요로하는 무기부품의 공급이 재개되어 「이란」 「이라크」전쟁의 교착상태가 타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이란」무기공급은 소련의「이라크」지원강화라는 냉전의 방정식을 뒤살려낼 위험성이 없지는 않지만 「이란」의 전략적인 중요성에 비추어 「레이건」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대 「이란」 관계의 개선에서 출발할 것이 분명하다.
서방국가들간에도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전이후의 「아랍」세계의 새로운 세력관계 형성을 자국에 유리하게 유도하고 전후복구에 지출될 막대한 「오일·달러」의 큰몫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인질석방이 지연된 큰 이유중의 하나는 인질이 「이란」에서 「베헤슈티」가 이끄는 「이슬람」공화당 (IRP)의 강경파와 「바니·사드르」대통령의 수건·실무파간의 협력투쟁의 쟁점이 되어 있었지 때문이다.
인질석방이 실무파의 우세의 결과라면 「페르시아」만 지역의 안정회복을 위해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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