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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2014 인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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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30면

올해는 청일전쟁 120주년, 러일전쟁 11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가 직접 전쟁의 당사자였다는 인식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국내에서는 이 전쟁들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많지 않다. 그러나 올해 100주년을 맞는 제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이 전쟁들은 당시 한반도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전쟁의 원인과 한반도 및 동아시아 질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알려진 대로 청일전쟁은 1894년 발생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조선 정부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대응에서 비롯됐다. 삼남 지방에서 발생한 농민봉기를 자력으로 수습할 능력과 의지가 없었던 고종은 결국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파견된 청나라 병력이 충남 성환 등에 다다르자, 한반도를 자신들의 주권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이익선’으로 간주했던 일본 메이지 정부는 ‘조선의 내정개혁’을 명분으로 군대를 출전시켰다. 양측은 서해상의 풍도와 아산 지역에서 교전을 벌였다. 농민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외세의 힘을 빌리고자 한 조선 정부의 안일한 대응방식이 결국 조선에 대한 이권 침탈을 꿈꾸던 또 다른 외세에게 개입할 구실을 제공한 셈이다. 10년 뒤인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도 결국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등의 전략적 각축이 근본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들 열강들의 동향을 미리 간파하지 못한 채 ‘균세(均勢)의 외교’를 펼치지 못했던 조선 위정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이들 전쟁의 결과 조선은 식민지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됐다. 또 당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뿌리 깊은 적대감이 형성됐다는 점도 현재 한국의 안보정책이나 동아시아 외교를 구상하는 데 있어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흥미로운 것은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이 벌어질 때마다 주요 무대가 되었던 곳이 수도 서울로 통하는 요충지 인천이었다는 점이다. 1894년 6월 청나라의 출병에 대응하기 위한 일본 혼성여단이 인천에 상륙해 수도 한성을 장악하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1904년 2월에는 인천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함선 바랴그를 일본 함대가 선제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6.25 전쟁 때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전세를 뒤집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은 것이 인천 상륙작전이었다. 역사적 경험을 볼 때 인천의 전략적 중요성은 결코 우연으로 치부하기 힘들 것이다. (경인일보 특별취재팀, 『세계사를 바꾼 인천의 전쟁』 참조 )

바로 그 인천에서 오는 9월 19일부터 제17회 아시안게임이 개최된다. 아시안게임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작됐다. 식민지 상태에서 전쟁의 피해를 겪은 한국·인도·필리핀 등 아시아 신생 국가들이 상호 평화와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대회를 만들었다. 이런 아시안게임이 청일전쟁 120주년과 러일전쟁 110주년을 맞는 시기에 동아시아 주요 전쟁들의 격전지라고 할 수 있는 인천에서 열리는 것은 의미가 깊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요즘 아시아에선 해양 도서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남북한도 핵개발 및 서해 북방한계선을 둘러싸고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아시아의 국가들은 물론,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까지 인천에 모인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각국 선수단 및 응원단이 최선의 역량을 발휘할 있도록 대회를 잘 준비하는 게 당장의 과제다.

나아가 아시안게임의 취지와 인천의 역사 등을 감안해 동아시아에서의 무력분쟁 발생을 차단하기 위한 인천발 동아시아 평화 선언 같은 것을 제안해 볼 만하다. 유럽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에 각국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등과 같은 문화교류 행사와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시민과 학생들의 교류 확대를 통해 각 국간 이해 증진과 신뢰 구축을 강화했다. 아시아 평화와 협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우리가 적극 주도해 본다면 어떨까. 이를 인천을 매개로 한 구체적 평화협력 제안으로 발전시킬 필요도 있다.

지난해 6월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서해를 ‘평화협력 우호의 바다’로 만들겠다고 합의했다. 이를 북한까지 확대해 인천과 칭다오, 그리고 남포 일대를 잇는 서해 전체를 ‘분쟁 제로’의 평화수역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체적인 제안도 해 볼 수 있다. 모처럼의 스포츠 제전을 계기로 한때 동아시아 주요 분쟁의 도화선이었던 인천을 아시아 평화협력의 무대로 탈바꿈시킬 정치가들의 대담한 구상력이 요구된다.



박영준 일본 도쿄대 국제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 주요 저서 『제3의 일본』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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