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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칼럼] 400억대 부자가 민심을 알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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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423억여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청와대 비서관, 그것도 나라의 기강을 담당하는 민정비서관 자리에 있는 것이 적절할까.

검사 출신인 우병우(47)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최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내역을 보고 든 의문이다. 웬만한 재벌 부럽지 않은 재산 규모가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는데다, 공직 수행에도 오히려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우 비서관은 2008년 작고한 이상달 기흥CC 및 정강건설 회장의 둘째 사위다. 검찰에 있을 때부터 ‘재벌급 검사’로 소문났었다. 그가 이번에 공개한 재산 중 눈에 띄는 것은 183억여원의 예금과 165억여원의 ‘사인(私人)간 채권’ 등이다. 본인(49억여원)과 부인(133여억원), 자녀들 명의로 돈이 예치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 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가 막연히 ‘사인간의 거래’라고 신고한 부분도 증여나 상속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롤렉스 시계 등 4000만원대의 보석류와 1억원 가까이 하는 특급호텔 헬스 회원권 등도 포함돼 있다. 보유 자동차는 없다. 아마도 법인을 통해 차량을 리스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재산 공개 이후 이어진 기자들의 취재 전화에 “장인에게 상속받은 것”이라는 짤막한 문자 메시지로 대신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불법행위를 통해 치부(致富)를 한 게 없기에 나는 떳떳하다’는 속내가 읽혀진다.

하지만 부패 변호사의 삶을 다룬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빗대 ‘롤렉스를 찬 민정비서관’이라는 비아냥이 시중에서 나도는 것을 보면 재력가가 민정비서관을 맡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 봐야 할 것 같다. 단순히 일개 비서관이라고 하기에는 민정비서관의 업무가 지니는 영향력과 무거움 때문이다.

그는 지난 5월 임명될 때부터 정치적 논란이 됐다. 2009년 대검 중수부 과장으로 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사했던 것이 발단이다. 야권에선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장본인으로 우 비서관을 지목했다. 그는 검사장급 승진 대상에서 누락되자 지난해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검찰 내에서도 “정치적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를 굳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임명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개된 그의 재산은 “과연 그가 서민들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힘있는 자와 가진 자들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민생을 파악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좌해야 할 민정비서관이 오히려 논란의 주체로 떠오른 것은 국가나 정권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그의 재벌급 재산 규모는 가뜩이나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 속에있는 한국 사회에서 서민들의 좌절감을 키워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정기관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듯하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그의 재산 규모는 임명직 공무원직에 앉히기에는 부적절한 것 같다” “그를 천거한 사람과 그를 민정비서관으로 임명한 정권에 실망감을 느낀다”는 등의 비판이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우 비서관이 자신의 재산 규모를 고려해 민정비서관 제의를 애초부터 사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적처럼, 없고 헐벗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 자꾸 낮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진 자, 그것도 많이 가진 자가 과연 그런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와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 등 이 땅의 비극에 울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상위 0.1%의 ‘수퍼 리치’ 민정비서관은 도대체 어떤 대책을 구상하고 있을까. 한편의 슬픈 희극을 보는 것 같다.

박재현 사회 에디터 abn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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