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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강추위 보통온도계론 잴 수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양평=허남진 기자】「시베리아」동장군(동장군)이 지휘하는 최정예 한파(한파)부대가 점령한 경기도 양평군-.
수원농업 기장 관측소 양평 분실 바로 앞에 차를 세우고 10m 앞 정문을 들어서 기전에 콧속이 쩍쩍 달라붙어 숨쉬기조차 힘들다.
집집마다 수도가 얼어붙었고 예전에 쓰던 공동 우물가엔 30cm 두께의 얼음이 덮었다. 부엌 식기·김치독·마루 밑·개밥그릇·어느 것이고 손을 대면 그대로 쩍쩍 달라붙어 사람이 좀처럼 운신을 할 수 없다.
관상대 창설(1907년)이래 전방 고지를 제외하고는 남한에서 가장 추운 영하32도6분의 날씨는 온 세상을 이렇게 얼려 놓았다.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이남수씨(52) 구멍가게.
물기 있는 상품은 모조리 방안으로 옮겼으나 허사다.「사이다」「구론산」통조림은 모두 하얗게 얼어 우유병처럼 돼버렸고「알콜」도수가 높은 소주까지 절반이상 얼었다.
이씨는 음료수들을 아랫목에 한데 모아 이불로 덮어두고 통조림과 과일 등은 담요로 싸서 냉장고속에 넣었다. 냉장고가 온장고가 되어 보온이 되는 희한한 판국이다.
음료수 도매상인 신진상사(양평읍 양근2리·주인 이원영·38)는 창고속의 각종 음료수 70짝 중 50짝이 얼어 병째 깨지는 바람에 30여만원의 손해를 봤다. 양서면 양수리 H옥 등 팔당「댐」 위로 즐비한 민물고기 매운탕 집들은 수조(수조) 가 모두 얼면서 잉어·피라미 등드 죽어버려 매운탕 거리가 없어 장사를 망치게됐다고 울상이다.
평소의 2배 쯤 군불을 지펴도 유리창은 물론 방안 벽까지 성에가 두껍게 덮였다. 일생을 양평에서만 살았다는 이갑순 할머니(91·양평읍 양근1이248) 는『일제 때 이번만큼 추웠던 기억이 난다』면서 자고로 양평은 추위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양평읍의 상수도는 3분의l쯤이 얼어붙어 일부 주민들은 눈을 녹여 쓰거나 얼음을 끓여 사용하기도 한다.
가축·농작물들도 갑작스런 추위에 바짝 움츠러들어 김상진씨 집에선 하루 달걀1개씩 낳던 암탉 2마리가 지난3일부터 알을 낳지 못했고, 앞 논에 마련한「비닐·하우스」엔 난로를 피웠으나 바닥이 녹지 않아 상치 파종을 하지 못했다.
양평군의 각 병원들은 앞으로 동상·피부 손괴 현상의 환자가 차차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어 이번 혹한은 날씨가 풀리면서 더 많은 후유증이 따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관상대는 이번 양평의 추위는 얼어붙은 남한강의 냉기와 많은 적설로 태양열을 흡수당한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여기다 대기오염이 없고 산이 멀리 떨어져 있는 분지에서 기온의 급격한 하강 현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3일 새벽 6시. 관측소 백엽상(백엽상) 수은 온도계의 최저 온도를 가리키는 청색선이 바닥눈금인 영하30도선을 넘어 밑으로 곤두박질하자 계속 떨어지는 기온을 측정하기 위해 측후소 분실장 이충태씨(29)는 수원농업 기상 관측소에 영하40도까지 측정할 수 있는 특수 최저기온 측정 온도계를 긴급 주문해 와야 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외국에서의 혹한으로는 1920년대 소련의「베르얀스크」에서의 영하 68도가 최저기온이고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남극의 소련「보스토크」기지의 경우는 1960년대 최저 영하 86도롤 기록한 적도 있었으며 우리 나라에선 중강진에서 1933년1월12일 영하43·6도까지 내려간 것이 기록.
전문의사들에 따르면 영하 15∼20도 때 사람들은 가장 춥다는 느낌을 받게되며 기온이 그 이하로 내려가면 추위보다는 일종의 두통이나「쇼크」와 같은 통증만을 느끼게 되어 추위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동상 등의 위험이 더욱 가중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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