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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밥공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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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부터 음식점 밥그릇이 바뀐다. 지금 사용되는 밥 그릇 보다 3분의 1정도가 작은 표준밥공기를 사용하게된 것이다. 거기에다. 밥은 8분 정도를 담도록 했다.
먹다 남긴 것을 버리는 낭비를 막기 위한 조치다. 물론 손님이 밥을 조금 더 요구하면 이 밥공기의 반까지는 무료로 제공된다. 이와 함께 반찬도 현재 보다 절반 정도로 줄이고 보리혼식 20%도 철저히 지키도록 되었다. 식량난 시대가 절감되는 밥상이다.
식량난에 대비해서 이번 조처가 처음은 아니다. 벌써 갖가지 방법이 동원돼 왔다. 주 2일의 무미일이 실시되는가 하면 보리혼식이며 공기 밥 실시가 있었다.
서울에서 73년에 표준식단제가 실시되고 40가지까지 올랐던 반찬 가짓수가 1종 정식 4종 한정식 5∼9종으로 제한되었었다.
그러나 실효가 별로 없어 취소된 일도 있다. 밥의 양과 반찬의 종류만 줄고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든가, 손님의 기호가 다양한데다 단속법규는 없다는 등 반발 이유로 흐지부지되었던 적도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음식점의 식품낭비는 한 음식점에서 하루 평균 쌀1말꼴로 시내 6천여 한식점의 연간손실은 무려 1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는 엄청난 양일 것이다.
식량난 시대에 밥 한술이라도 줄이고 아껴야된다는 논리는 물론 타당하다. 우리와 같이 식량의 지급자족이 어려워 적지 않은 양의 쌀을 비싼 외화를 들여 들여와야 하는 처지에선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걱정되는 면도 없지 않다.
밥공기가 줄면서 인심마저 오므라들까 걱정이다. 없는 살림에도 밥 사발에 가득 퍼담아야 직성이 풀렸던 선인들의 푸짐한 인심이 이젠 옛말이 되었지만 작아지는 용기 크기만큼 푸짐한 인심은 간데 없을 것 같다.
또 음식문화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어떤 주식엔 어떤 반찬이 어울린다는 한국음식의 조화는 어찌될 건지.
거기다 소박하고 조촐한 원래의 맛을 잃어버린 변질된 음식 맛 문제도 더욱 심화될 듯하다.
그러나 식량난 시대에 역시 소비를 줄이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식량난은 우리뿐이 아니다. 세계적인 기상이변 때문에 식량부족이 심각하니까 어쩔 수 없다.
어떤 통계로는 현재 세계인구 39억이 필요한 연간 곡물은 10억5천만t인데 그중 쌀이 2억t이며 동남아가 그 생산과 소비면에서 8할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우리 민족은 그 쌀과 더불어 온 역사 속에 살아왔다.
내년엔 통일계 가운데도 「청청벼」등 20개 품종과 일반계 중 「설악벼」등 18개 품종이 장려된다고 발표되었다. 그래도 역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의 사회·경제·문화적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음식점의 음식 맛도 나아질 낌새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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