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속 10km길 신문 1부 배달하던 집배원 벼랑서 떨어져 동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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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설주의보가 내려 폭설이 쏟아지는 밤길에 신문 한 장을 배달하던 상이용사출신의 집배원이 벼랑길에 미끄러져 실신, 동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충남 서산군 안면읍 안면우체국소속 집배원 오기수씨(48). 오씨는 지난 12일 하오 7시쯤 폭설이 내리는 악천후를 무릅쓰고 우편배달을 하러 서산군 안면읍 중장리 해안벼랑길을 넘어가다 실족, 정신을 잃고 쓰러져 영하15도의 찬 눈 속에서 순직했다.
오씨는 68년 안면우체국 집배원으로 첫 발을 디딘 후 12년 동안 안면읍 중장리 지역 배달을 해왔으며 이날도 하오 6시30분쯤 우체국에서 10km 떨어진 신야리1구 엄정한씨(54) 집에 농민신문 1부를 배달하고 돌아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당시 엄씨는 신문을 배달해준 오씨에게 『눈보라가 치고 날이 추우니 자고 가라』고 권유했으나 오씨는 『아직 배달해야할 우편물이 8통이나 남아 있고, 우체국에서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눈보라가 치는 어둠을 향해 집을 나셨다.
밤늦게까지 오씨를 기다리던 우체국장 강정평씨(43)와 동료 집배원 8명은 다음날 아침 오씨의 배달구역인 중장리1∼4구, 신야리 1∼2구 등 집배 구역을 거꾸로 수색하기 시작해 상오 11지쯤 엄씨 집에서 4백m 떨어진 곳에 쓰러져 눈 속에 묻혀있는 오씨를 찾아냈다.
우체국장 강씨는 오씨의 얼굴에 타박상이 있고 우편행낭과 보조가방 등이 없어 처음에는 타살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으나 뒤늦게 이곳에서 6백m가량 떨어진 해안벼랑 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흩어진 행낭 등을 발견, 오씨가 벼랑에서 미끄러져 다친 몸을 이끌고 인가 쪽으로 뒤돌아가다 동사한 것으로 밝혀냈다.
오씨는 6·25때 전투에 참가했다가 원 손에 부상을 입어 상이용사로 제대했으며 월급 16만1천원과 수당1만5천원으로 8식구가 어렵게 살아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권진숙씨(43·서산군 안면읍 승언리 505)와 3남3녀. 장남은 공주사대 3학년에 재학중이며 나머지 자녀는 고교생 l명, 중학생 2명, 초교생 1명 등이고 장녀는 서산농업통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오씨는 12년간 안면우체국집배원으로 일하면서 매일새벽 6시에 집을 나서 하루 40km씩을 자전거와 도보로 우편물을 배달해 오면서도 하루도 직장을 쉬는 날이 없었다.
오씨의 장례는 15일 가족장으로 치러졌으나 장례비가 없어 동네주민들이 술과 떡·담배 등을 마련해 주었다. 체신부는 17일 순직한 오씨에게 근정훈장을 주도록 총무처에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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