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인 조치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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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심 속의 기백이랄까, 정열이 충만한 무심이랄까, 반면을 대할 때는 상대를 잊지만 한편으론 상대를 강렬히 의식하기 때문에 기백과 정열이 용솟음치기도 합니다.』
24세. 한국 최초의 일본명인 조치훈8단. 그의 기풍은 어느덧 인생관으로 응고되고 있다.
바둑은 조화다. 흑과 백, 상대와 나, 실리와 세, 투쟁과 타협, 나와 내 마음, 그리고 무심과 기백의 조화. 이 조화를 깨닫는데 18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투지 하나로만 싸웠습니다. 이기지 않으면 남는 것은 멸망밖에 없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 절망 않기 위해 파죽지세로 일본의 대가들을 쳐부쉈다. 그는 바로 투지의 화신이었다. 그에게는「킬러」·「컴퓨터」·「면도날」도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투지와 기백도 중요하지만 무심과 인고를 조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입신의 경지에 이르면 내다보는 수에 큰 차이는 없다.
1분을 생각하고 두거나 한시간을 생각하거나 결국은 같은 곳에 착 점한다.
『그러나 좀더 좋은 수는 없는가 하고 한번 더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자연히 초읽기에 몰리곤 합니다.』
창업보다 더 어려운 것은 수성이라 한다. 그래서 조 명인은 자신의 기사수업은 바로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1일 동경도 동경「이찌가야」의 일본기원에서 명인윤허를 받은 조 명인은 전에 없이 무심 속의 투지에 불타고 있었다. 【글·사진=김두겸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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