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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외교 간섭을 규탄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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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동안 잠잠했던 한·일 관계가 또다시 소난해 가고 있다. 지난 20일「스즈끼」(영목선행)일본 수상이 이레적으로 최경록 주일 대사를 수상관저로 불러『한국 정부가 김대중을 처형할 경우 대한 협력에 지대한 제약을 줌과 동시에 지금까지 소극적이던 북괴와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간의 한·일 우호관계나 국제위상 있을 수 없는 외교적 협박을 감행함으로써 한국인의 분노를 사게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내의 형사 사건을 두고 재판의 결과도 보기 전에 이러한 행태로 나온 것은 외교적 협박인 동시에 명백한 내정간섭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정부로서는 일본내의 사회당·공산당 등 좌익세력 및 자민당의 AA연 등 친북괴 세력의 압력을 구실로 삼을지 모르나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표리부동한 작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간에 일본은 입으로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일본에도 긴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속으로는 한국의 발전을 시기하여 긴장완화니 등거리 외교니 하는 명분하에 한국과 북괴에 두갈래의 줄을 대 놓고 임의로 이를 조각하여 한국을 견제하고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하려하고 있는 것 같고, 말로는 한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통일된 한국의 미래상을 위협시함으로써 한반도의 분단과 긴장 상태의 항구화를 회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그러한 일본의 불성실한 대한자세에 한국이 이의를 제기하면『지금까지 한국은 우리편이고 북한은 적으로 구분한 것은 금일의 정세에 맞지 않는다』『한국이 일본의 외교 정책에 시비를 거는 것은 곤란하며, 한국에는 지금까지「서비스」했고 오히려 과잉「서비스」했다는 등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79년2월 고정 법상 담화에서). 이제 일본 정부는 김대중 사건을 두고 한국에 대하여 굴종과 항거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국민 감정은 오히려 일본에 대하여 한국과 북괴의 양자택일을 촉구하고 싶은 심경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일본 정부도 열지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 집단이 김대중 사건을 경략적으로 활용하는데 광란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 김대중이 영웅이 되면 적화통일 야욕의 태반이 달성되리라고 김일성은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 일본 정부로서는 10년전에 있은 김대중 피랍 사건을 현재 재판에 계류중인 김대중 사건과 결부시키려고 하는지 모르나 양자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사건이며, 그 내용이 분명한 범법행위인 만큼 법원의 판결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리가 명백한 한국의 국내 문제에 대하여 왜 일본은 소아병적인 과잉반응으로 나오고 있을까. 김대중 사건에 적극 개입하여 한국 정부를 궁지로 몰아 넣고 김일성의 대남 전략을 정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상 긴요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한국에 굴종을 강요하는 자체에 뜻이 있다는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일본 정부의 저의는 보다 고차원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지하다시피 상리 추구에 철저한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관계에 있어서 매우 어려운 고비에 직면하고 있다. 미·일 교역의 역조관계는 개선됨이 없이 연년 누적되고 있고 미국에서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정치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면 79년도 미국내의 자동차 판매 대수의 21·7%가 일제 차이던 것이 금년에는 27·7%에 달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미국의 자동차 업계의 손실이 37억「달러」에 달하고, 전체 종업원의 23%에 해당하는 l8만여명이 해고되는 엄첨난 양상이 노정되고 있으며 바야흐로 미·일 관계는 무역전쟁을 방불케 할 지경이다.
경제시책의 실패로 패퇴한「카터」의 뒤를 이을「레이건」행정부는 앞서 말한 미·일 경제관계의 부조리 타파에 주력하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일본의「스즈끼」내각은 향후로 어려운 국면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의 대미관계를 고려해「레이건」행정부가 역점을 두게될 극동의 전략적 요충인 한반도에서 한국을 상대로 무엇이든 분규를 야기시킴으로써 장차의 국면 전개에 있어서 미국을 측면에서 견제할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스즈끼」수상의 정치 형태가 착상됐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리할 때 일본 정부의 대한 외교 협박은 한국을 대미 외교의「스케이프·고트」 로 남용하려는 강대국주의적 독선의 소산이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일본 정부가 인권외교라는 차원에서 김대중 사건에 간섭하고 나섰다면「카터」행정부의 소위 인권외교의 말로가 어떠한 것인가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 우방에서 범법 행위자를 법으로 심판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인권 외교라고 규정한다면 인권외교란 약소국에 대한 내정 간섭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무상의 안보지원과 한국민의 피와 땀으로 유지되고 있는 동아의 봉평성세속에서 상리 추구에 여념이 없으면서 한국에 대한 간섭과 협박을 일삼는 나라가 금일의 일본이라면 이보다 더 큰 부조리는 없을 것이다.
우방으로서의 일본 정부의 이성과 양식에 기대하건대 한국의 국민 감정에 불을 지르는 길과가 될 뿐, 추호의 이득도 있을 수 없는 대한 간섭을 즉시 중지하고 선린 공형을 위한 양국관계의 재정립에 힘쓸 것을 촉구할 뿐이다. 박준규(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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