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뒤집은 판결에 … 검찰·이석기 측 모두 "상고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다.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보수단체 어버이연합 회원들(왼쪽)과 이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통진당원들이 법원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형수 기자]

11일 오후 통합진보당 이석기(52) 의원 항소심이 열린 서울고법 형사대법정 417호. 방청권 추첨을 거친 통진당 관계자와 취재진, 국가정보원 관계자 등 100여 명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었다.

 서울고법 형사9부 이민걸 부장판사가 오후 3시40분쯤 “형법상 내란음모죄 성립 요건인 내란 범죄 실행의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공소 사실 중 내란음모는 무죄”라는 대목을 읽자 이 의원이 순간 빙긋이 웃었다. 피고인석에서 두 시간여 동안 판결 선고 내용을 담담하게 듣던 그로선 이례적 모습이었다. 그는 “피고인 이석기에게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다”고 할 때도 평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 의원의 친누나라고 밝힌 50대 여성은 이 부장판사를 향해 “이민걸 너는 집안의 수치야, 이게 재판이야”라며 의자를 치며 고함을 질렀다. 선고 후 일부 지지자가 울부짖거나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이 의원은 손을 흔들며 "고맙습니다”라고 외친 뒤 퇴정했다.

 이 의원은 지난 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최후진술 녹음파일에서 “내란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다. 검찰은 내가 지시·공모했다며 듣도 보도 못한 RO 총책이라는 붉은 감투를 씌웠다”고 주장했었다.

 이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의 쟁점은 혁명조직(RO)이 내란을 계획했는지와 실제 위험성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RO의 실체가 없고 내란 실행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원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RO 내부 제보자 이모(46)씨의 진술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진술이 ‘개인적 경험’이라서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 의원이 RO의 총책인지에 대한 판단도 달랐다. 1심 재판부는 130명의 청중 앞에서 거침없이 불쾌감을 표현한 이 의원의 행동이 “그가 RO의 총책이란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RO의 실체 자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가 엄격하게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이 의원의 ‘총책’이란 지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피고인들을 비롯한 130여 명이 특정 집단에 속해 있으며 이 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부분까지는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폭동 수준의 모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선동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내란음모)으로 이어졌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재판부는 “이 의원 등이 내란선동 행위를 했지만 회합 참석자들과 함께 내란 범죄의 구체적 준비를 위한 어떤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원심에선 지난해 5월 마리스타 수사회 회합에서 권역별 토론을 하고 총기 및 사제폭탄 제조법을 논의한 것을 “내란음모의 합의·결의”로 판단했었다.

 이 의원의 선동에 참석자들이 어느 정도 호응을 했지만 “국가기간시설 타격 등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준비를 했다거나 위험한 수준의 합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위해 구체적인 물질적 준비 방안을 마련하라는 발언에 호응하며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의 폭력적인 방안을 논의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꼬집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이 의원 측은 상고할 뜻을 밝혔다. 검찰 측도 “공소 사실대로 모두 유죄가 맞는다고 보는 만큼 상고하겠다”고 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결했을 뿐 최근 종교인들이 제출한 탄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글=전영선·윤호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