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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 과세, 10대 기업 중 6곳은 '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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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내 증시 시가총액 톱 10(상위 10개 기업) 중 6곳은 사내유보금 과세(기업소득환류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한국전력·포스코·신한지주·SK텔레콤이다. 반면 나머지 4곳 중 현대자동차·네이버·기아자동차는 정부가 과세기준을 높게 정할 경우 과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고, 현대모비스는 과세기준에 관계없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본지가 10일 한국거래소 유관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의뢰해 추정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기업들이 지난해 수준으로 투자·배당을 하고 임금 인상액을 정했을 때 내년에 내야 할 기업소득환류세가 얼마인지를 추정한 것이다. 기업소득환류세는 기업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이익 중 투자·임금·배당에 쓰지 않고 남긴 돈에 과세하는 제도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시뮬레이션에서는 해외 자산까지 포함해 투자액을 계산하는 연결재무제표 대신 국내 자산만 투자액에 포함시키는 개별재무제표를 사용했다. 정부가 해외 자산은 투자액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해서다.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통해 밝힌 환류세 부과 방침에 따르면 기업들은 두 가지 과세 방식(A·B형) 중 사정에 따라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A형은 당기순이익의 60~80% 중 투자·임금·배당을 뺀 나머지 금액에 10%의 세율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평소 투자금액이 큰 제조업에 대한 맞춤형 과세라 할 수 있다. B형은 당기순이익의 20~40% 중 임금·배당을 뺀 나머지 금액에 세금을 매긴다. 평소 투자가 많지 않은 서비스·금융업체가 임금과 배당을 늘리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A·B형 두 방식의 과세기준은 연말이 돼야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일단 세법개정안에서는 큰 틀의 과세 범위만 정한 뒤 연말 시행령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확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A형과 B형의 최소·최대 과세 범위를 감안하면 각 기업의 세금이 얼마나 될지를 추정할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조합은 A형을 당기순이익의 80%, B형은 당기순이익의 40%로 정하는 것이다. 둘 다 과세 범위 중 최대치를 적용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면 앞서 제시한 6곳(삼성전자·SK하이닉스·한국전력·포스코·신한지주·SK텔레콤)은 세금을 내지 않고 4곳(현대자동차·네이버·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은 과세 대상이 된다. 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표기업의 절반 정도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환류세 도입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재계의 반발도 무마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럴 경우 시총 1위 삼성전자는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반면 2위인 현대자동차는 983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당기순이익 17조9295억원의 61%(11조319억원)를 설비투자나 특허권 취득과 같은 유·무형 자산 취득에 썼다. 과세 대상에서 빠지는 국내 투자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국내 투자액(2조5845억원)도 당기순이익(5조1281억원)의 50%로 삼성전자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차이는 해외 투자에서 비롯됐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앨라배마와 중국 충칭 공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오덕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현대자동차는 완성차업체의 특성상 해외투자 비중이 다른 업종의 기업보다 훨씬 크다”며 “한국에서 완성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것보다 해외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형을 80%, B형을 20%로 할 경우에는 현대자동차(491억원)·현대모비스(214억원)·기아자동차(136억원)·네이버(65억원) 순으로 세금이 매겨진다. 세금 부과대상 4곳 모두 부담이 줄어든다. A형 대신 B형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A형(60%)·B형(40%)이나 A형(60%)·B형(20%)은 가장 가능성이 낮은 조합으로 평가된다. 이럴 경우 10곳 중 현대모비스 한 곳만 세금을 내게 된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순이익(2조796억원)을 많이 낸 데 비해 A형 공제액은 5000억원대, B형 공제액은 2000억원대로 많지 않아 어떤 조합에서든 모두 세금 부과대상이 됐다.

오덕교 연구위원은 “정확한 과세기준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당수 기업이 환류세를 물지 않으려면 투자나 임금·배당을 지금보다 많이 늘려야 한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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