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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공전-좌절로 얼룩진 격랑의 1년 7개월-10대 국회 해산…그 불행했던 발자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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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대 국회는 27일 새 헌법의 발효와 동시에 해산됐다. 79년3월17일에 개원식을 가진 10대 국회는 벽두부터 백두진 국회의장 선출을 둘러싼 여야 격돌을 겪으면서 우울하게 출범하여 만1년7개월 10일간의 단명으로 끝을 맺었다. 장기집권으로 야기된 권력의 폐쇄성, 체제의 경직성, 그리고 상대적인 야당의 무기력으로 인해 10대 국회는 시종 여야대립·공전·좌절로 얼룩진 우리 의정사의 가장 불행한 장으로 기록될 것 같다.
10대 국회의 파항상은 의원 이동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1년7개월의 단명 국회 중 의원직에서 물러난 사람이 33명이고, 유정회 의석 승계가 4명이다. 2백31명으로 출발한 의석이 2백2명으로 줄었다. 1할을 훨씬 상회하는 유고율이다.
사퇴는 지역구 25명, 유정회 3명.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김진만 이병희(권력형 부정부패 혐의) ▲예춘호 김녹영 이택돈 손주항(김대중 사건 등) ▲구태회 김용태 길전식 신형식 현오봉 장영순 고흥문 정해영 박영록 송원영 김수한 박해윤 최형우 김동영(비리·축재 혐의)씨 등 23명과 이완희씨가 「5·17」후 일련의 조치로 의원직을 사퇴했고 신현확씨가 최규하 전 대통령내각에서 국무총리로 기용될 때 공화당 의원직을 내놓았다.
유정회 사퇴「케이스」는 이승윤 재무장관과 최경록 주일대사의 전직 및 모종 혐의로 조사를 받은 최태호씨 등 3명.
김영삼씨의 제명이외에 김현기 최성석(신민), 양일동(통일), 김성환씨(유정)등 4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김성환씨를 승계 한 고귀남 의원은 작년 정기국회 때부터 국회에 들어왔지만 남재한 이호동 김유복 의원은 지난달 22일 의원 선서만 하고 그날로 국회와는 하직, 단 이틀간 국회에 출입했을 뿐으로 10대 국회 비련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이호동 김유복씨는 겨우 2개월 세비만을 받고 물러났는데 김씨의 경우 겸직 금지로 마을금고 중앙회장이란 직책마저 잃었다.
원내 교섭단체는 현재 △공화당 68명 △신민당 52명 △유정회 77명 △무소속 6명. 개원 당시는 유정 77, 공화 68, 신민 61, 민정회 21, 통일 3, 무소속 1(박찬)이었다.
79년 6월 공화당이 민정회 중 15명을, 신민당이 나머지 민정회 7명과 무소속 1명을 입당시켜 공화당과 신민당 의석수가 83명과 68명으로 늘었던 때도 있었으나 공화당은 「10·26」후의 순풍파동으로 김진만 이후락 임호 박찬종 오유방 박종규 의원을 제명시키기도 했다.
회의 운영면에서도 10대 국회는 보잘 것이 없다. 그 동안 정기국회 2회와 임시국회 3회 등 모두 다섯 차례의 국회를 소집했으나 총 회기 2백38일 중 실제 회의를 운영한 개의일수는 29일뿐이었다. 「4·19」로 인해 2년1개월만에 해산된 4대 국회가 6백86일간의 회기에 2백12일간 운영됐고 「5·16」으로 이번 10대국회의 수명보다 더 짧은 9개월2일만에 문을 닫은 5대 국회도 세 번의 회기 2백58일 중 개의1백42일을 기록했으며 유신으로 1년3개월만에 도중하차한 8대 국회는 집회 8회, 회기 4백2일, 개의 81일로 모두 10대 국회만큼 허무하지는 않았다.
국회의장선출을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하여 회의가 공전한 일은 역대 국회 중 10대 국회가 유일한 기록이다.
신민당은 지역구 출신의원이 3분의2가 되는 국회에서 굳이 대통령 지명의 유정회 의원을 의장으로 앉힐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고 공화당과 유정회는 청와대의 강력한 사주에 밀려 신민당 입장을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과잉 방어했다.
회기동안 야당 총재의 직무정지가처분 상태와 대통령 사망 등의 거센 격랑 속에 휘말렸던 제1백3회 정기국회는 의정사상 처음으로 야당 총재의 제명까지 단행하고 말았다.
그후 신민당 소속의원 66명과 통일당 3명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게 되었고 「10·26」 박정희 대통령 사망에 따른 상황변화로 사퇴서가 반려 처리되어 이들의 요구로 다시 제1백4회 임시국회가 지난 5월20일 소집되었으나 「5·17」조치에 따른 정치활동 중지로 단 한번의 회의를 갖지 못한채 폐회됐다.
국회가 소집되었으면서도 회의를 열지 않은채 폐회된 일은 4대·7대에 각1회, 8대에 3회가 있었으나 그때는 모두 여야의 전략에 의한 유회였지만 지난번 임시국회의 유회는 국회외적상황에 기인한 것이 다르다. <한남규 기자>

<10대 국회일지>

<79년>
▲3월12일=10대 임기개시
▲3월15일=제101회 임시국회 개회
▲3월17일=개회식. 백두진 의장, 민관식, 고흥문 부의장 선출·
▲5월30일=신민당 전당대회 김영삼 총재 당선
▲7월20일=제102회 임시국회개회
▲7월28일=신민당, 헌정심의위안 심의요구 여권, 단독상임위운영
▲8윌7일=여야중진회담원칙합의
▲8월11일=YH여공 신민당사 농성, 강제해산
▲9월8일=김총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판결
▲9월17일=정운갑 신민당 총재 대행직 수락
▲9월20일=제103회 정기국회 개회
▲9월21일=여당단독 의사 일정 결정으로 여야 단상격돌
▲9월22일=여, 김영삼 의원 징계 동의안 제출
▲10월4일=의사당내 유정회 의원 총회실에서 징계 동의안 전격처리
▲10월13일=야, 69명 사퇴서 제출
▲10월18일=부산비상계엄선포
▲10월20일=마산 위수령
▲10월26일=박정희 대통령 서거
▲11월5일=여, 국회에서 야당의원 사퇴서 일괄반려
▲11월26일=개헌특위구성안 통과
▲12월3일=개헌특위 여야동수로 발족. 백두진 의장 사퇴
▲12월6일=최규하 대통령 피선

<80년 >
▲5월17일=제104회 임시국회소집 공고 비상계엄 전국확대
▲5월20일=제104회 국회 정치활동금지로 유회
▲10월27일=새 헌법에 의해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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