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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자고 있었던 거예요" 구타 목격한 후임병 입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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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모 병장이 조사 초기 작성한 진술서. “윤 일병이 냉동식품을 먹다 쓰러졌다”고 적혀 있다.

28사단 윤모(20) 일병 사망 사건의 주동자인 이모(26) 병장은 사건 직후 주변 동료 등에게 입단속을 시키며 가혹행위를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헌병과 군 검찰의 윤 일병 사건 수사기록에서 밝혀진 것이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병장은 윤 일병이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병원으로 후송된 4월 6일 밤 첫 조사에서 “윤 일병이 갑자기 음식을 먹다 혼자 졸도를 하며 쓰러졌다. 냉동식품 하나에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 다음 날인 4월 7일 조사에서도 “함께 TV 시청을 하며 냉동식품을 먹던 중 윤 일병이 고개를 떨군 뒤 옹알이를 하면서 오줌을 싸고 쓰러졌다”고 말했다.

 이 병장은 특히 구타에 가담한 다른 선임병과 목격자의 입막음까지 시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는 의무대에서 천식 치료를 받고 있던 김모(20) 일병에게 “○○씨(김 일병 이름)는 (윤 일병 구타 때) 자고 있었던 거예요”라고 다짐을 받으려 했다. 또 윤 일병이 이송된 연천의료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다른 선임병들을 병원 주차장에 모아 놓고 거짓 진술을 하도록 지시했다.

 문제는 윤 일병의 몸에 남은 상처였다. 이 병장은 사건 당일 밤 선임병들에게 “윤 일병이 말을 못하게 되면 가슴에 든 멍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생긴 것이라고 하자”고 말했다. 이 병장을 두려워했던 선임병들은 그의 지시를 따랐다. 지모(21) 상병은 사건 직후 동료 병사에게 “의무병들이 모두 입을 맞췄다. 단순 사고로 처리하겠다. 나 이거 사실대로 말하면 이 병장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선임병 중 한 명은 윤 일병이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동안 “그냥 윤 일병이 이대로 안 깨어났으면 좋겠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증거인멸에도 적극적이었다. 김 일병은 “4월 7일 아침 하모(20) 병장이 윤 일병 관물대를 열어 수첩과 연습장을 찢었고 윤 일병 물건을 더플백에 넣어 어딘가로 가져갔다”고 진술했다.

 ◆윤 일병, 갈비뼈 14개 부러지고 장기 파열=한편 윤 일병 사망 후 국방과학수사연구소가 실시한 검시 결과 윤 일병의 좌우 갈비뼈 14개가 부러져 있었고 비장은 파열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머리에서 가슴, 배, 다리로 이어지는 상·하반신 전체가 검붉은 피멍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점에서 출혈 등에 따른 쇼크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직접적 사인은 기존에 밝힌 대로 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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